군대 내 성폭력으로 임신까지 했지만 가해자는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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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639회 작성일 22-05-06 14:55본문
지난 3월 대법원에서 해군에서 발생했던 성소수자 부하 여군장교를 성폭행했던 사건에서 피고인들에 대하여 군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했던 사건에 대하여 일부 파기환송 되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두 명의 가해자로부터 각각 입은 성폭행 사건이었다, 피해자는 갓 임관한 상태에서 직속상관이었던 가해자 A로부터 10차례 추행을 당했고 2차례 성폭행 당했다. 성폭행으로 임신까지 하게 된 피해자가 함장이었던 가해자 B에게 이를 보고하고 도움을 호소하였으나 황당하게도 가해자 B는 피해자를 자신의 숙소로 불러 성폭행했다.
이 사건은 피해발생 약 7년 후 문제제기 되었다. 군 사법기관의 수사와 기소를 거쳐 군법원에서 재판이 열렸고, 1심은 A와 B에 모두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일로 세간이 떠들썩했고, 군 검찰은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했다.
군법원에서 유죄와 무죄를 오가던 사건은 그렇게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대법원은 3년여의 숙고 끝에 가해자 A에 대한 항소심의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하지만 B에 대한 상고는 기각되었다.
피해자가 이 사건의 결과 앞에서 가질 황망함은 당연하다. 여성단체 등 각종 단체들의 원성도 컸다. 하지만 이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통해 우리가 환기해야할 이 사건의 본질이나 이 사건이 보여주는 시사점은 좀 다른 부분에 있다.
실상 대법원이 일부 파기환송이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은 군대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과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잘못된 판단처럼 비판받은 가해자 B에 대한 무죄 판결은 대법원이 피해자의 진술을 믿어주지 않아 이른 결론이 아니다.
군대를 경험하거나 군대 성폭력 사건을 처리해본 변호사라면 누구나, 군대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대게가 상당한 폭력이나 협박의 개입이 없음을 안다. 가해자 입장에서 피해자에 대해 성폭력을 저지를 때 굳이 강한 폭력이나 협박을 따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강력한 위력이 상시 작동하고 있고, 피해가 반복될수록 피해자는 물리적 저항을 할 엄두조차도 상실한다. 이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사정이다. 이 사건 피해자가 상관인 A와 B로부터 중복적인 피해를 입은 것이나 장기간 이를 신고나 고소하지 못하였던 것에 업무상위력이 작동했을 것임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가해자 A에 대한 군형법상 강간치상죄로, 가해자 B에 대한 군형법상 강간죄 및 강제추행죄로 각각 기소되었다. 일반적인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는 폭행협박을 성립요건으로 한다. 가해자 B가 갓 부임한 피해자에 대하여 함정에서 장기간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면서 강간죄 성립요건 수준의 폭행협박이 필요했을까? 그러니 가해자 B가 피해자에게 저지른 범죄는 실상 업무상위력에 의한 간음과 강제추행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하지만 군 검찰은 이를 군형법상의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로 수사하고 기소했다. 범죄성립요건이 맞지 않으니, 애초에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주어졌을 질문들이 적확했을 리도 없다. 그런 수사기록을 토대로 가해자 B에 대하여 내려진 무죄 판단은, 그가 피해자를 성폭력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기소된 범죄명인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로의 성립을 인정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즉 대법원에서 가해자 B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것은 성인지감수성 등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사건이 업무상위력간음죄나 업무상위력강제추행죄로 의율되지 않았었기 때문이 컸다. 그간 한국에서는 군인 등이 가해자인 성범죄에 있어 수사와 기소, 재판을 군 사법기관에서 따로 관장해왔다. 그리고 군 사법기관은 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대게를 군형법을 적용해왔다, 그러니 이 사건도 군 사법기관에서 군형법을 적용했다. 그런데 군형법에는 업무상위력에 의한 성폭력 관련 조항이 없다.
과거 군 사건을 담당하며 이를 군검찰에 항의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군 검찰의 답변은 일반 형법에 업무상위력 간음 등이 있으니 필요하면 그걸 적용하므로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간 군 수사기관에서 군형법 대신 성폭법상 업무상위력간음죄 등을 적용했던 경우가 얼마나 되었을까? 관련 통계자료도 확인할 길이 요원하다. 변호사로서 군 법원에서 진행 중인 재판에서 재판부가 적용법조를 군형법상 강간이나 강제추행 조항에서 성폭법상 업무상위력 관련 조항으로 변경하라고 재판지휘를 하는 것을 경험한 적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사건만이 아니라 그간 군대 내 여군 성폭력 사건에서 업무상위력으로 발생하는, 특히나 반복적으로 피해가 중첩된 피해사건들이 제대로 처리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와 관행이 존재했다.
다만 이 사건은 당초 업무상위력에 의한 성폭력 관련 조항을 아예 적용하기 어려웠다. 이 사건은 2010년경 발생했다. 당시에는 성폭법상 업무상위력에 의한 성범죄의 공소시효가 짧았다. 그래서 이 사건에 성폭법상 업무상위력에 의한 성범죄 조항을 적용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대법원에서 가해자 B가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온 개별 범죄들에 있어 강간죄나 강제추행죄 성립에 요구되는 폭행협박이 행사되었는지가 쟁점되었을 것인데, 이를 인정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임이 짐작된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이 사건 가해자 일부에 대한 무죄확정 판결의 이유가 피해자의 잘못이라 할 수 있겠는가.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했다고 한들 피해자가 가해자 B로부터 입은 피해가 범죄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 사건 판결을 두고 우리가 소환해야 할 문제는 대법원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과거 기소되지 못하였거나 무죄가 선고되었던 사건들에서 상당부분 이런 억울한 피해자들이 존재할 것임을이다. 국방부는 유무죄나 기소여부에 상관없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피해를 호소했던 군대 소속 피해자들에게 정상적인 일상이 영위되고 있는지 등을 모니터링할 의무가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나마 군대 성폭력 사건을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군대 내부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갖는 어려움이 비단 군 수사기관이나 군 법원만이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가해자들의 민간의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수사받고 재판받는 것과 별개로 가해자들에 대한 내부 조사와 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의 참여권이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 이에 대한 적정한 감시와 견제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범죄 피해의 처리가 민간으로 이양됐다는 것만으로 피해자가 안심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다 갖춰진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 사건의 대법원 판결과 피해자의 눈물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이자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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