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당한 지적장애인 동생... 재판부는 '가해자'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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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785회 작성일 22-07-19 16:26본문
"언니 그 사람은? 감옥 가?"
동생 영희(가명)씨의 질문에 언니 영선(가명)씨는 약속했습니다.
"언니가 그 사람 감옥 보내줄게."
영선씨의 동생 영희씨는 스물 넷 성인이지만 정신연령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입니다. 중증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사건 전까지는 공공기관에서 장애인 근로도 할 만큼 건강하고 성실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1월 사건이 있던 날, 영선·영희 가족의 세상은 무너졌습니다. 영희씨는 SNS에서 알게 된 가해자 A군을 만나 공원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영희씨는 이 사건으로 발생한 상해로 큰 수술을 했을 뿐 아니라,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해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습니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소년부로 송치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가해자 A군이 만 17세 소년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가해자가 처벌 받게 하겠다"는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영선씨는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6일, 공동소송 커뮤니티 '화난사람들 일단알려'에 "중증지적장애인 강간등치상 사건을 소년법원으로 송치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이 게시물은 화나요 324개(7월 13일 기준)를 모았습니다.
화난사람들 에디터가 피해자의 언니 영선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피해자 병원에 있는데... 가해자 풀려나, 소년보호재판으로
'일단알려' 글에 따르면 가해자 A군의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는 생식기에 큰 상해를 입었습니다. 굉장히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상황에서 범행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유입니다. 영선씨는 "119 침상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수혈을 받기 위해 타 병원에 이송해야 할 때는 입고 갈 수 있는 옷조차 없었습니다"라고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진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 A군은 피해자의 신체 사진을 유포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일단알려' 글에서 영선씨는 "가해자는 SNS를 통해 동생으로부터 사진을 받아낸 후, 이를 친구에게 유포하였습니다"라고 서술했습니다.
죄질이 나쁜 만큼, 영선씨뿐만 아니라 검찰과 국선 변호인은 모두 강한 처벌이 내려질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가해자는 만 17세로, 소년법상 촉법소년*에 해당하지 않아 형법상 형벌을 받을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검찰은 가해자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습니다.
(*일명 '촉법소년'으로 불리는 형사미성년자의 기준은 만 10~14세입니다. 소년법에 따르면 만 10~14세의 '촉법소년'은 형사처벌이 불가능하고 오직 소년보호재판에서 보호처분만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만 14~19세는 '범죄소년'으로 분류되어 형사처벌이 가능합니다. - 기자 말)
하지만 대구지방법원의 재판부는 "사건을 소년부로 송치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피해가 심각하고 범행 정도와 내용이 좋지 않다"면서도 "범죄 전력이 없고 피고인의 나이가 어린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A군이 받게 된 소년보호재판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처벌'보다는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형사재판과 달리 전과가 남지 않고, 2년 동안 소년원에 수용하는 것이 가장 무거운 처분입니다.
"피해자한텐 관심이 없었어요"
"어떻게 용서를 하겠어요. 제 탄원서는 안 읽어본 것 같아요. 피해자한테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너무 억울해요."
1시간가량의 인터뷰 동안 영선씨가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피해자 진술권'이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형사재판에서 피해자 측은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선씨는 이 '피해자 진술권'을 활용하여 가해자를 "감옥에 보내달라"는 동생의 바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1심 공판에서 피해자 진술권을 요구하자, 판사가 "언니분이 너무 울어서 (진술할 시간을) 줄 수가 없다. 적어온 거 그대로 내면 참고하겠다"라고 말했다는 게 영선씨 주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간 넉넉하게 드릴 테니 피해자분 다시 한 번 (합의에 대해)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가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듯한 모습에, 영선씨는 큰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에서 영선씨는 "재판장이 피해자한테 2차 가해하는 것 아니냐. 재판장이 그러니 피해자인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참담하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좌절감만이 가득했던 1심 공판이 결국 피해자에게는 마지막 진술 기회였습니다. 다음 공판은 없었거든요. 검찰이 항고했지만 2심 대구고등법원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습니다. 이어진 검찰의 재항고에 대법원 역시 기각 결정문을 돌려 보냈습니다.
대구고등법원 재판부의 항고 기각 결정문에는 "(가해자에게)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피고인은 아직 성적 관념이나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만 17세의 소년이고 기록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형사처벌보다는 소년의 특성을 고려한 소년보호처분을 통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는 이 문장은 1심 판결문에 있는 것과 똑같은 문장입니다.
반면 결정문에 피해자가 받았어야 할 '기회'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검찰이 항고/재항고 이유서에 적은 "피해자의 진술권을 보장하지 않았음"에 대한 답변은 단 한 문장도 없습니다.
아픈 피해자를 대리하는 언니 영선씨가 "법원이 가해자에게만 기회를 부여하고, 피해자에게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마지막 희망... "동생 위해 목소리를 보태주세요"
대법원의 재항고 기각 결정에 따라 가해자 A군에 대한 처분은 소년보호재판의 재판부가 결정할 몫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소년보호재판은 피해자 측의 참관조차 불가능합니다. 가해자인 범죄소년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선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가해자 A군의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직접 모아 소년보호재판이 열리는 대구가정법원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가해자 A군의 소년보호재판은 8월 10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소년부 재판관은 최소한 진정서를 읽어봐주는 성의는 보였으면 좋겠어요."
영선씨의 바람은 소박했습니다. 그저 피해자 측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봐주는 것. 그것이 진정서를 제출하고자 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가해자 A군이 합당한 처벌을 받고, 영선·영희 가족이 피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하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진정서를 통해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영선씨는 7월 31일까지 진정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