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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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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234회 작성일 22-10-1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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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1년 1월, 청주시 가경동 택지개발현장에서 17세 여공 박모양이 강간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다.

피해자는 1월 26일 토요일 오후 6시경에 회사 기숙사에서 집으로 향하다가 실종되었는데, 다음 날인 1월 27일 오전 10시 50분경 가경동 택지조성공사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순찰 중이던 경관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건 현장은 2.5m 깊이의 하수도가 매설되어 있었고, 공사현장의 특성상 큰 웅덩이와 하수관들이 다수 널러져 있는 장소였는데, 피해자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범인에게 납치되어 길가에서 100m 떨어진 공사현장으로 끌려가 강간당한 뒤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경찰의 추정으로는 피해자의 사망시점은 26일 밤 9시에서 12시 사이인 걸로 보였다.

경찰이 살해된 여공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공사현장 근처 마을의 32세 여성 김모씨가 강도납치를 당했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사건 때문이었다. 김씨는 1월 26일 토요일 오후 8시 30분경에 약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길에서 30대 남성에게 납치당해 100m 떨어진 하수관로로 끌려갔다. 범인은 여성이 입고 있던 스타킹과 바지로 이 여성의 손발을 결박한 뒤에 여성이 소지한 당시 가치로 12만 원에 해당하는 현금과 반지를 빼앗고 강간을 하려 했다. 그러나 이 여성은 범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손발에 결박된 것을 풀고 하수관 속으로 도망친 뒤 빠져나가 택시를 타고 간신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피살된 17세 여공 박 양과 납치되었다가 극적으로 도망친 김씨를 납치한 남성이 동일인물인지에 대해서는 17세 여공의 사망 추정 시점으로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김씨의 증언으로는 "자신이 납치된 하수관 인근에 다른 여성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라고 진술했기 때문에 '이 남성이 먼저 17세 여공을 납치해 강간 살해한 후[1], 8시 30분경에 지나가던 피해자 김씨를 납치해 금품을 빼앗고 강간하려다 김씨가 도망치면서 실패한 게 아닌가?'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김씨는 충격 때문에 범인의 구체적인 인상착의는 기억하지 못했다가 간신히 범인이 30대 남성이고 키가 170cm 정도 된다고 증언했으며, 경찰은 피해자 17세 여공 박씨의 시신에서 정액을 발견했고, 사건 현장에서 동일인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을 발견해 이를 국과수에 감정 의뢰했다고 한다. 이후 이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사를 찾을 수 없는 걸로 보아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걸로 보였다.

2.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된 사건인가?

이렇게 잊혀진 이 사건은 2019년 9월, 경찰이 의뢰한 화성사건의 5, 7, 9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확보한 DNA를 대조한 결과, 1994년 청주시에서 처제를 강간 살해한 범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춘재와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어, 이춘재가 화성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춘재가 거주하던 청주에서 벌어진 사건인지라 이춘재의 범행 가능성을 의심받게 된 것.

일단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인 1991년 1월은 화성 9차 사건(1990년 11월 발생)과 10차 사건(1991년 4월 발생)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며, 범행수법 또한 박씨의 경우 피해자의 속옷으로 재갈을 물리고 양손을 뒤로 결박당했으며, 김씨의 경우 자신의 스타킹과 바지로 손발을 결박당했는데 이 또한 화성사건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 더욱이 김씨가 기억해낸 범인의 인상착의가 30대 남성이며 키는 170cm 정도라는 것도 흘려들을 수 없는 대목이다. 화성 7차 사건에서 목격된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20대 중반 정도의 연령대로 보였는데, 나이가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당시 사건 현장이 공사현장이고 가로등도 없었을 곳이라 어둠 속에서 김씨가 목격한 얼굴의 연령대를 약간 높게 봤을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170cm의 키라는 건 7차 사건에서 목격된 범인의 신장과 유사하다.

이춘재는 1991년에 이미 청주시에 있는 골재회사에 취직한 상태였다. 아내 될 사람이 그 청주시 골재회사의 경리였기 때문에 아내와 교제하던 시점에 이미 청주와 화성을 오고 가는 상황이었다.

3. 

경찰은 3개월간의 수사끝에# 상습절도혐의로 수감된 박모(당시 19)군을 범인으로 검거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박군은 91년 1월 26일 오후 8시에 가경택지개발공사장에서 귀가중이던 박양을 위협하여 인근 공사장으로 끌고가 손발을 끈으로 묶고 폭행하다가 반항하자 속옷 등으로 입을 막고 목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재판에 넘겨졌으나, 2019년 10월 2일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박군은 법정에서 증거부족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검찰측은 담당 검사와 박군이 대화한 녹음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했으나 검사가 미리 진술거부권이 있음을 고지하지 않아 무효가 되었다. 비슷한 이유로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소서 등이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결국 1993년 항소심에서 증거 부족으로 박군은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게되었다.

박군이 무죄판결을 받게 된 것에는 생존한 김씨의 진술이 굉장히 오락가락한것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피해자가 기억하고 있던 것은 범인의 목소리와 얼굴 윤곽이였는데, 처음 박군을 만났을때는 범인의 목소리와 다른거 같다고 진술했다가 너무 똑같다고 번복했고 증인 신문에서는 잘 모르겠다고 재차 번복했다. 얼굴 윤곽 역시 처음에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다가 확신한다고 번복했고, 재판에서는 확신은 없지만 범인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이러한 사실때문에 피해자의 진술 역시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피해자 김씨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김씨는 엄연한 납치, 성폭행 피해자이며,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범인의 모습을 자세하게 기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건은 밤에 있었기 때문에, 대낮에 전등아래에서 용의자를 봤을 때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어보이는 것이 사람이다. 실제 일부 뉴스기사에선 김씨가 범인 체포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실적으로도 당연히 김씨는 잘못이 없다.

4. 이춘재의 자백

2019년 10월 6일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이춘재가 화성연쇄살인사건 10건외에 추가로 자백했다는 4건의 사건중에 2건이 청주에서 일어났는데 그 중 이 사건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 

5. 기타

경기대학교 이수정 교수(범죄심리학)는 "당시 청주 일대에서 일어난 10대 강간살해 미제사건들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실제 1992년 4월 23일,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학천리[3] 학천교 공사장에서 암매장된 20대 여성 시신 1구가 발견되었다. 포클레인 기사가 학천교 옹벽 터파기 공사를 위해 포클레인으로 작업을 하던 중 땅속 40cm 밑에서 스타킹으로 양손이 뒤로 묶이고 나체인 채로 죽어 매장된 채 발견된 것인데, 경찰의 추정으론 이 여성이 3개월여 전에 살해되어 암매장당한 걸로 보였다.# 알몸인 채로 스타킹으로 양손이 묶였다는 점은 화성사건과의 유사성을 추측해볼 수 있지만, 땅에 암매장되었다는 점은 화성 사건 및 가경동 사건과의 차이점이다.

화성사건을 재조사 중인 경찰은 화성 10차 사건이 일어난 1991년 4월부터 유력 용의자 이모 씨가 처제를 강간 살해한 1994년 1월 사이의 기간에 화성과 청주 일대에서 실종되거나 살해된 여성이 없는지 내부기록과 기사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다.# 경찰이 가경동 사건과 학천리 사건을 다시 분석해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피해자의 부모는 평생 박군(당시 19세)을 진범으로 알고 살아왔다. 박 군은 길 하나 건너 이웃이었는데, 사건 이후 원수가 되어 왕래가 끊겼기에 박 군이 1997년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뒤늦게 이춘재의 자백 소식을 듣고 지금이라도 진범이 잡혀 다행이지만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다고... 한편 용의자였던 박 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경찰서에서 고춧가루 고문을 당했다고 말하며 울었지만, 현재 박 군의 부모는 세상을 떠난 상태이다.#

2019년 10월 22일, 한국일보에서 당시 누명을 쓴 박 모 씨를 단독 인터뷰했다. 박 모 씨는 당시 경찰이 고등학교 중퇴생이자 절도에 연루된 자신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우고 자백을 받기 위해 잠을 안 재우고 짬뽕 국물을 얼굴에 붓는 등의 고문을 가해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겨우 면회 온 어머니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백을 번복해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세간에 찍힌 살인범 낙인 때문에 지금까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한다. 경찰은 박 모 씨가 무죄 선고를 받은 후, 진범 검거를 포기하고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분류했던 걸로 드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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