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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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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223회 작성일 22-10-0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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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李康石, 1937년 2월 5일[1] ~ 1960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육군 장교로 이기붕(대한민국 제3대 국방부 장관)의 아들(친장남)이자 이승만(제1·2·3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양자(양삼남)이다.

생애[편집]

이강석은 1957년 3월 26일이승만의 83세 생일에 맞추어 양자로 입적되었다. 부부였던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사이에 소생이 없었다. 이승만에겐 전처인 박승선(朴承善, 1876년 12월 15일 ~ 1911년 6월 13일)과의 사이에 이봉수(李鳳秀, 1896년 4월 17일 ~ 1904년 3월 16일)란 아들이 있었지만, 미국 체류 중에 병사했으며 이승만은 그 죽은 아들을 늘 잊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이승만의 집착과 이기붕의 아들인 이강석에 대한 프란체스카의 애정으로 이강석은 이승만의 83세 생일에 맞춰서 양자로 입적된다.

양자 입적 후 이강석과 관련된 추문 역시 들끓었다. 지난날 1953년 8월, 이강석은 고대 정법대(정치학과 1학년 1학기 수료 및 전퇴)를 거쳐 한 달 지난 이후 1953년 9월, 서울대 법대(법학과 1학년 2학기)를 전학하여 다녔는데, 이를 두고 학교에서는 이강석의 ‘부정편입 입학’ 문제로 말이 많았다. 서울대 법대생들이 동맹휴학에 돌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자, 이강석은 1953년 10월 초순 당시, 서울대 법대 법학과 1학년 2학기를 중퇴하고 1954년 육군사관학교로 재입학하여 14기(문학사)로 나왔으며, 1958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된 이강석의 권력도 역시 막강했는데, 이를 근거로 대표적인 예가 어느 청년이 이강석을 사칭한 사건인 '가짜 이강석 사건'을 들을 수 있다.

1959년에는 미국 유학, 5월 25일 미국 포트 베닝 (Fort Benning) 보병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마치고 귀국했다.[2]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해 민중들이 항거한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 지 이틀 뒤인 4월 28일경무대에 비서가 쓰던 36호실에서 미국으로 도주하려고 했던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사랑했던 남동생 이강욱을 권총으로 쏘고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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