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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 억압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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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209회 작성일 22-09-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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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춘천에서는 경찰관이던 친아버지가 평소 가정에 소홀한 것에 앙심을 품은 딸이, 자기 아버지가 자신을 2007년부터 지금까지 상습적으로 성폭행해왔다고 경찰에 고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 조사를 담당했던 경찰관은 아동 성폭행, 특히 근친 성폭행에 대한 최근의 도덕적 비난에 대해 무척이나 공감했는지 고발이 들어온 후 10일도 되지 않아 아버지를 전격 구속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영월지청장은 정밀 수사를 지시했고, 결국 딸과 어머니, 이모까지 합세한 공모극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피고가 경찰관이었으니 망정이지, 힘없는 서민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딸의 일기장에는 구체적인 날짜와 정황, 피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근친 성폭행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들끓는 요즈음, 아마도 중형을 면하지 못하였거나 혹은 무죄가 판명된다고 해도 지루한 구속 수사에서 돌이킬 수 없이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되었을 것입니다.

레이건의 뒤를 이어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해인 1989년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시점으로부터 다시 20년 전 당시 8살이던 수잔 네이슨(Susan Nason)은 동네에서 실종된 후 몇 달 만에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20년 동안이나 미해결인 채로 먼지 낀 경찰서 파일 박스 속에서 잠자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20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수잔의 친구 에일린 프랭클린(Eileen Franklin)이 친구의 살해범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지목했습니다.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에일린은 아버지가 수잔 말고도 또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신고한 때문인지 에일린의 진술은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게다가 당시 프로이트를 신봉하는 심리학자들의 열성 때문이었는지 결국 에일린의 아버지는 일급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언도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선정성을 직감한 출판계는 에일린을 설득하여 《아버지의 죄(Sins of the father)》라는 제목의 고백 수기를 출간하도록 하였으며, 심리학자로 이 사건에 깊이 개입했던 레오노레 테르(Leonore Terr)는 《풀려난 기억(Unchained memories)》라는 책을 출간하여 억압된 기억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고양시켰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에일린의 아버지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와중에서 다시 한 번 사건이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에일린의 언니 제니스는 에일린과는 정반대의 진술을 했고, 에일린이 법정 진술을 하기 전에 최면 치료사로부터 최면을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결정적인 증거는 새롭게 도입되기 시작한 DNA 검사였습니다. 모든 증거는 에일린이 위증을 하고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1997년 수감된 지 7년 만에 에일린의 아버지는 석방되었지만, 그의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보상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미국 심리치료사들은 ‘억압된 기억(Repressed memories)’에 대해 광적일 정도로 열광해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근친 성폭행과 같은 충격적이고 게다가 성적인 기억은 의식 속에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 모습을 숨긴 채 둥지를 틀게 되며, 이러한 억압된 기억은 피해자의 감정이나 행동에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영향을 끼침으로써 피해자를 고통에서 못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심리치료사의 역할은 최면 등의 방법으로 억압된 기억을 표면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숨겨진 저주의 봉인을 해제하는 것이라 믿어졌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이러한 억압된 기억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심리학자들은 프로이트가 19세기 말 비엔나에서 맞닥뜨렸던 고민과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 역시 히스테리 환자의 기억 속에서 거의 예외 없이 아버지로부터의 성적 유혹을 받는 내용을 발견한 후 이렇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비엔나 시내를 걸어 다니는 점잖아 보이는 신사들의 상당수가 파렴치한이라는 말인가?”

이러한 고민을 과감하게 폭로한 사람은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The myth of repressed memory)》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였습니다. 그녀는 에일린 사건이 한창이던 1995년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피험자의 가족들로부터 피험자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진술을 얻어낸 연구팀은 피험자에게 이를 들려주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보라고 주문했습니다. 단 연구 팀은 가족들의 진술에 더하여 날조된 기억을 덧붙였습니다. 피험자가 5~6살이었을 때 시장에서 길을 잃었던 적이 있는데, 낯선 아저씨가 도와줘서 가족들에게 데려다주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피험자들 중 무려 4명 중 1명이 자신이 시장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고 기억해냈으며, 심지어 연구 팀이 이야기하지 않은 내용까지도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피험자는 연구 팀의 암시에 응하여 있지도 않은 기억을 날조해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억압된 기억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선전과 열광, 그리고 비난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가족 간의 관계가 파탄 난 사람들, 잘못된 기억을 진실이라 여기며 평생 회한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의 피해는 아무도 보상해주지 못했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마치 다락방에 묻혀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들과 같아서 뒤지고 파헤치면 끄집어낼 수 있고 발굴된 기억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잘못되다 못해 허황된 이론 때문에 심각한 혼란이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권 운동가와 친족 성폭력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성폭력 사건을 끄집어내는 데 피해자가 되살려낸 억압된 기억밖에는 기댈 만한 증거가 없다는 한계에 부딪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전히 이에 집착하며, 심리치료사나 최면에 의해 풀려난 기억을 통해 사건을 밝혀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과연 누구 편에 있을까요? 정의는 피해자를 옹호하는 편에 서야 한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심리치료사와 사회운동가의 이론적 입장에 오류가 없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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