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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힘들어요…” 결혼 단념한 청년 장애인 커플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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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704회 작성일 22-02-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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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장한 누나가 들어왔는데 도도하고 까칠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순수하고 착하더라고요.”

조민성(가명·29)씨는 여자친구 도유림(가명·30)씨를 처음 본 2018년 3월을 이렇게 기억했다. 태어날 때부터 근이영양증을 앓고 중증 지체장애인이 된 민성씨는 20대가 되어 근육계통 장애인 모임에 들어가 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입회원으로 들어온 유림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유림씨도 민성씨처럼 희귀난치성 질환인 척수근위축증이란 근육병을 앓는 중증 지체장애인이었다. 팔다리를 쓰기 힘들어 전동 휠체어 생활을 하는 둘은 운명처럼 닮아 있는 서로에게 끌렸다. 용기를 낸 민성씨의 고백으로 만남은 시작됐다.

민성씨 첫사랑은 2주 만에 위기를 맞았다. 유림씨는 혼자 밥을 먹을 정도로 팔을 쓸 수 있었지만 민성씨는 아니었다. 활동지원사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대학, 직장생활을 해온 유림씨와 달리 민성씨는 주로 집에서만 생활했다. 영화를 보기로 한 세 번째 데이트 날, 밥 먹길 주저하는 민성씨 탓에 둘은 식사도 못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저녁 9시에 귀가해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랜 유림씨는 이별을 통보했다. “둘이 좋아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책 없었죠.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유림씨)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유림씨도 줄곧 붙잡는 민성씨를 외면할 수 없었고, 둘은 재회했다. 둘은 1주일에 한 번 장애인시설이 잘 갖춰진 서울 대형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낸다. 활동지원사나 가족이 데이트 장소까지 이동시켜줘야 한다는 점을 뺀다면, 민성씨 마스크를 씌워줄 때 유림씨가 낑낑대야 한다는 점을 뺀다면, 둘은 쇼핑하고 밥 먹고 차 마시는 등 그 나이대 청년이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데이트를 즐긴다. “유림이 덕분에 활동지원서비스도 이용하고, 장애에 굴하지 않고 바깥세상에 도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죠.”

그렇게 4년. 서로를 향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두 시간씩 통화하는 둘은 일상의 모든 걸 공유하는 ‘소울메이트’다. 성격도, 정치 성향도 찰떡궁합. ‘이제는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인 시대라지만 둘에겐 처음부터 결혼이란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단란한 가정을 이뤄 평생 함께한다는 건 꿈같은 일이다. 둘은 씻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도움을 서로가 줄 순 없다. 둘 중 한 명이 쓰러지더라도 다른 한 명은 구급차를 불러줄 수 없다. 바라만 봐야 한다.

“제가 비장애인이었다면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으니 민성이랑 결혼했겠죠. 근데 자꾸 현실적인 문제들이 떠올라요. 로맨틱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우울해지고, ‘이렇게 만나는 게 맞나’ 싶어요.”

결혼하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줄어드는 건 큰 문제다. 각자가 24시간 도움을 요하지만 결혼할 경우 가족이 생겼다는 이유로 대개 지원 시간이 줄어든다.

24시간 지원을 받아도 평범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중증 장애인 2명을 케어하려면 활동지원사 3~4명이 신혼집에 번갈아 체류해야 한다. 대가족이 돼버려 둘만의 공간에서 신혼생활을 즐기는 로망을 실현할 수 없다. “제 마음대로 집안을 꾸미고 이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부부의 일은 프라이버시인데 남한테 전적으로 맡겨야 하니….”(유림씨)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방이 여러 개 있는 집을 구해 활동지원사들과 분리된 부부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거나 베이비시터·가정부를 따로 쓸 정도의 부(富)가 있다면 말이다.

민성씨는 현재 재택근무로 하루 4시간씩 사무보조 일을 한다. 수입은 한 달 90만원. 장애인의 일이란 게 2년 단기 계약직이 많아 그마저도 지난해 9월 새로 구한 직장이다.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유림씨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기업, 공기업, 국회까지 다양한 곳에서 일하며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정규직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소일거리를 전전하고 있다. 투잡을 뛰어도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 210만원. 둘에겐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아이를 낳고 싶단 생각을 할 때면 곧 현실의 장벽에 막힌다. “저 자신을 온전히 케어할 수 없는데 아기를 낳아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아기한테도 과연 그게 맞는 걸까 고민스럽죠.”(유림씨)

그런 문제들을 알기에 양가 부모는 둘의 마음이 깊어지는 걸 경계한다. 결혼하지 못했을 때 오는 좌절감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민성씨와 유림씨는 결혼을 단념했다. 대신 함께 사회복지와 자산관리를 공부하고 있다. 두 분야를 연결시킨 플랫폼을 만드는 사업을 구상한다. 사업이 잘돼 돈을 많이 벌면 결혼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가끔은 한다. “어떻게 보면 결혼이 노후를 함께 약속하고 준비하는 거잖아요. 비장애인처럼 결혼해 사는 건 어렵더라도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민성씨)

민성씨는 유림씨와 함께 캠핑을 가 바비큐 요리를 해주거나 럭셔리한 해외 휴양지 리조트에서 노을을 보며 와인 마시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 장면에서 둘의 손발엔 장애가 없다. 유림씨는 장애인 커플을 위한 복지 시스템과 일자리가 완벽히 구비된 사회를 상상한다. 그 세상에서 둘은 활동지원사 사정이나 날씨 탓에 못 만나는 일 없이 언제든 옆에 붙어 체온을 나눌 수 있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헌법 제36조 1항) 민성씨와 유림씨는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취재팀이 ‘우리도 부모입니다’ 시리즈에서 만난 장애 부모 25인처럼 크고 작은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두 사람은 결국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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