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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즘과 마조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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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50회 작성일 22-05-1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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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성도착의 일종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말이다.


이 단어들은 정신의학자 크라프트에빙(Richard von Krafft-Ebing, 1840~1902)에 의해 정신병리학 용어로 등재되었다. 가학성 음란증과 피학성 음란증, 혹은 좀더 단순하게 가학증과 피학증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영어식으로 발음하여 새디즘과 매저키즘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디즘은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쾌감을 느끼는 성향을, 마조히즘은 이와는 반대로 고통을 받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성향을 지칭한다. 둘의 결합을 사도마조히즘이라 부르고, 또 이를 SM이라 줄여 부르기도 한다.


사디즘이라는 말은 프랑스의 소설가 사드(Marquis de Sade, 1740~1814)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사드는 프랑스혁명기를 살았던 귀족 출신의 소설가로서 폭행과 반혁명 혐의, 필화 등의 이유로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고 그러면서도 다수의 문제적인 작품을 남겼다.


특히 『소돔 120일』 같은 소설은 단순한 외설의 차원을 넘어 메스껍고 끔찍한 폭력으로 전화되는 성 충동의 한계 지점을 보여준다. 이런 연유로 사드의 이름은 성과 결부된 폭력성의 상징이 되었다.


마조히즘이라는 말은 사드보다 한 세기쯤 후의 인물인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자허마조흐(Leopold Ritter von Sacher-Masoch, 1836~1895)에게서 유래한다.


그의 작품은 사드의 경우와는 달리 전혀 외설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우아하고 섬세하며 신비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와 같은 작품에서처럼 노골적인 묘사가 없으면서도 환상적인 성감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곤 하지만, 계약을 통해 여성의 매질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남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마조히즘이라는 개념에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게 되었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공히 폭력성과 결합된 성 충동의 현상으로 존재하고 있으나, 둘 중 좀더 문제적인 것은 마조히즘이다. 공격성이 외부를 향해 있는 것으로서의 사디즘은 그 이치를 따져볼 때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지상의 거의 모든 유기체가 행하는 기본적인 활동에 그런 유의 공격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자기방어를 위한 것일 수도 먹이를 사냥하거나 채집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학대하거나 공격하는 경향으로서의 마조히즘은 이런 점에서 보자면 매우 낯설고 기이한 것이다. 자살하는 짐승들이 드문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보존이라는 유기체의 기본적인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프로이트는 마조히즘의 기제에 대해, 외부를 향한 공격성이 자기 자신을 향해 방향을 돌린 것으로 이해했다. 성 충동과 결합된 공격성이 있고, 이것의 능동적인 형태가 사디즘이라면 수동적인 형태가 마조히즘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같은 힘의 두 측면이고 전체적으로는 사도마조히즘이라는 종합적인 틀로 정리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공격성이 방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자아가 지닌 죄의식, 자기를 처벌하고자 하는 의지를 들었다.


마조히즘은 내면화된 아버지인 초자아가 죄를 지은 자아에 대해 행하는 처벌이라는 것이다.


마조히즘의 기본적인 틀은 여자에게 매맞는 남자의 모습인데 그렇다면 누가 때리고 누가 맞는가. 자아에 대한 초자아의 처벌이라는 프로이트의 틀에 따르면, 아버지가 때리고 아들이 맞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매를 쥔 손의 주인은 여자가 아닌가.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매를 쥔 손의 주인이 여성이 된 것은 동성애적 선택을 피하기 위한 장치라고, 여성의 배후에는 처벌하는 아버지가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들뢰즈는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마조히즘의 틀에 접근했다. 프로이트가 마조히즘이라는 도착적 증상과 그것의 발생 기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가갔다면, 들뢰즈는 자허마조흐의 작품세계를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했다. 프로이트와는 달리 그는, 마조히즘을 사디즘의 전도된 형태로 이해하지 않고 사디즘과는 달리 독자적인 원리를 지닌 것으로 파악하려 했다. 그는 사드와 자허마조흐의 작품세계 자체의 차이를 통해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차이를 규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 둘의 차이는 논리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라는 차이로 구분된다. 논리는 직선적이고 우회를 모르며 이런 점에서 폭력적이다. 반면에 상상은 논증이 아니라 변증적인 세계, 구부러지고 예측하기 어려운 신비한 세계를 만든다. 이런 차이를 바탕으로 들뢰즈는 마조히즘에 등장하는 때리는 손의 여성 주인공과 맞는 엉덩이의 남성 주인공의 모습을 프로이트의 경우와는 다르게 설명했다.


마조히즘에서 분명한 것은 매를 맞고자 하는 의지, 즉 처벌받고자 하는 의지일 뿐이다. 때리는 여성을 아버지의 대리자라고 상정한 프로이트와는 달리 들뢰즈는 그 손의 주인공을 어머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왜 아들을 처벌하고 있는 것인가. 여기에서 어머니의 매질에 몸을 맡긴 주체는 아들이지만, 더 정확하게는 아들 속에 들어 있는 나쁜 아버지이다.


즉 아들은 자기 안에 들어 있는 나쁜 아버지를 처벌하기 위해 어머니의 매질에 몸을 맡기고 있다는 것,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쁜 아버지를 용납한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마조히즘 매질의 의미라는 것이 들뢰즈의 설명이다.


이와 같은 논리를 축으로 들뢰즈는 마조히즘이 자기 자신을 향해 선회한 사디즘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제를 갖춘 것이라 했다. 이런 그의 설명은 우리 시대 문화 현상에 대해 다양하게 적용 가능한 시각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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