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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대학교수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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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98회 작성일 22-12-2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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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기수였던 전용술이 자신을 구명해준 대학 교수가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피살자가 1명인 사건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가해자에게 사형 확정 판결이 나온 사건이기도 하다. 

2. 1차 살인사건[편집]

1974년, 전용술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자신이 짝사랑하던 마산 중부 경찰서의 직원인 엄 씨를 칼로 살해하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현재는 18세 이상 소년범에게만 무기형 이상을 선고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기준이 16세 이상 소년범이었기 때문에 만 17세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추정] [2]

전용술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 교수는 그를 초등학교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선배로서 정성을 다해 옥중 뒷바라지를 다 해주며 무기징역에서 감형되어 조기 석방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 덕분에 전용술은 감형을 받아 1993년에 모범수로 석방되었다.

3. 2차 살인사건 이전[편집]

전용술은 출소 후 올바르게 새 출발을 하려는 의욕은 희박했던 것 같다. 땀을 흘리며 일할 생각은 없이 틈만 나면 이 교수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런 식으로 2~300만 원 상당의 생활비를 여러 차례에 걸쳐 받아갔고, 사업 자금을 대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수 부부가 완강히 거절했고, 교수를 원망하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전용술은 살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이 교수가 살해당하고 난 뒤, 교수의 동창은 "며칠 전 이 교수가 휴대폰에 녹음된 협박 내용을 들려줘 깜짝 놀랐다."라고 증언했다. "돈을 안 주면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전용술의 협박이 담겨 있었던 것. 또한 전용술은 2003년에도 이 교수가 지인으로부터 매입해 개업한 합성동 모 식당에서 교수의 부인을 칼로 위협하는 등 인질극도 벌인 적이 있었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남들이 자신을 살인자라고 비난할 때 유일하게 토닥여 주며 생활비를 대주기도 했던 교수가 자신이 보기엔 그저 ATM 기계로 보였을 것이다.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란 명언이 딱 들어맞는 사안인데, 애초부터 저런 엽기살인마 전과자는 일반인들도 다들 차별하고 기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착한 교수는 그래도 후배랍시고 정을 베풀었는데, 그게 결국 살인에 빌미가 되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느니, 검은 머리 짐승 거두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그 사례 중에서도 최악의 사례다. 단순히 돈 빌려 달라며 민폐끼치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돈 안빌려준다고 원한을 품고 살인까지 저질렀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라느니, 업보라느니 이런 고전적인 가치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저렇게 교수급의 사람이 저런 밑바닥 전과자에게 저렇게 사람 대접해주는 사례도 드문데, 드문 선행이 살인의 빌미가 된 안타까운 사건이다.

4. 2차 살인사건[편집]

2004년 7월 26일, 이 교수는 방학을 맞아 마산 모대학 교수들과 마산시내 모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10시 40분경 귀가 길에 합성초교 동창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하게 호프나 한잔 마시자."라고 청해 합성동 모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이 교수의 동창도 동석했으나, 11시경 돌아가 교수와 동창회장 단 둘이서 남은 술잔을 비우고 있을 무렵, 11시 30분경 전용술이 친구를 대동하고 호프집에 들어섰다.

전용술의 손엔 종이로 된 쇼핑백이 들려있었지만, 아무도 이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호프집에서 이 교수와 전용술 사이에 돈 문제 얘기가 있었으나,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27일 새벽 2시 20분경, 전용술과 함께 온 친구와 이 교수와 술을 마시던 지인이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사건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전용술이 이 교수에게 칼을 휘두른 시점은 이때이다.

화장실 간 이들이 술자리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전용술이 미리 준비한 회칼로 이 교수의 옆구리를 두 차례 찌른 뒤였고, 바닥에 쓰러진 이 교수의 등을 두 차례 더 찌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전용술은 칼을 든 채 어디론가 사라졌고, 일행은 119와 경찰에 신고를 했다.

5. 도주극[편집]

사건 현장에서 바로 도주한 전용술은 새벽 택시를 타고 마산 내서읍으로 갔다가 택시를 갈아타고 함안 가야 사거리에 내렸다. 여기서 휴대전화를 버리고 인근 논두렁에서 피 묻은 옷과 몸을 씻고 걸어서 함안으로 가 군북 인근 공원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

다음날 7월 28일, 기차를 타고 진주시 개양으로 도피했고 시내 시장에서 반팔 티와 바지를 구입해 갈아입었다. 진주 남강 둑과 시내 등을 배회하며 4일간 노숙하다가 도피 자금이 떨어지자 2차 범행도 벌인다.

8월 1일, 진주시 문산읍 사거리에서 벌여 김 모(48) 택시기사의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강도로 돌변해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히고 택시와 현금 8만 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후 훔친 택시를 사천읍 두량리에 버린 후 인근 야산에서 또다시 노숙을 한 후 삼천포로 향했다. 8월 3일 오후 6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돌아왔다.

당시까지 전용술은 이 교수가 숨졌는지 알지 못하다가 주변 사람들이 언론에 보도된 이 교수 사망 사고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사망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때 사망 소식을 처음 접했다는 전용술은 자살을 할지 갈등하다가 포기하고 창원 시내 한 중학교 운동장 등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후 10일간 도피했던 그는 8월 5일 6시, 창원시 내동 모 아파트에 사는 선배에게 찾아가 3만 원을 빌린 후 창원 올림픽 공원 벤치에서 빵과 우유를 먹고 있다가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급습을 받아 가지고 있던 칼을 빼앗기고 긴급 체포되었다. 검거 기사기사2기사3

재판에 넘겨진 전용술은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2005년에 사형이 확정되었고, 지금도 복역 중이다.

6. 자전적 소설 집필 시도[편집]

전용술의 이름이 최근에 거론된 것은 2013년이다. 57세의 나이가 된 전용술은 살면서 사람 2명을 죽인 경험을 그냥 두긴 아까웠는지 부산 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A4 용지 221장 분량의 자전적 소설 '어느 사형수의 독백'을 틈틈이 집필했다.[3]

이후, 2011년 9월 모 출판사에 소설을 보내려고 했지만,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의 발신 금지 조항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수용자 문예작품 외부발송 불허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의 살인사건 2건을 소재로 했고 이들 사건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피해자의 유족과 지인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만큼 외부발송을 금지한 처분은 적법하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피해자들이 공적인 관심대상도 아닌데 묘사 내용이 공공의 관심사와 관계없는 사적 영역이었다. 그렇게 대법원에서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출판은 좌절되었다. 관련 기사관련 기사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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