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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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28회 작성일 23-02-10 13:52본문
1. 개요[편집]
이 문서에서는 청년실업이 생긴 이유를 말한다.
1990년대 이후 나타난 IMF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국제적 금융 위기를 겪으며 경제 성장률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장기적인 경제 침체 현상이 일어났다. 그 이후 기업들은 투자보다 안정에 중점을 두게 되었고 사람을 많이 뽑지 않아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수요를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청년층이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고령자의 산업현장 재진입, 재취업 등 부모세대나 기성세대가 산업현장에 예전보다 더 오래 근무하고, 늦게 은퇴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규자를 채용할 이유가 서서히 사라져갔고, 그 결과로 자녀는 부모에게 더 오래 의존하는 형태로 사회 구조가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일정 연령을 지났거나, 정년퇴직 이후에도 재채용되는 이들에 대해 임금피크제라는 대안을 계획하고 있다.
처음 취직, 노동 진입연령의 상승도 자연스럽게 산업현장에서 청년 보기가 힘든 환경을 불러왔다. 보통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에 취직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당시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은 아니라서[1],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학교 졸업하고도 취직하거나, 고등학교 중퇴도 있었다. 보통 20대 초반이면 취직하고, 3~5년 정도 지나면 여성은 주임, 대리급, 남성은 군 복무 후 20대 후반이면 대리나 주임, 반장 등의 직급을 얻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1987년 군사독재정권 몰락 이후, 해외 여행, 해외 유학이 자유롭게 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일상을 보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을 통해 전해지고 전달되는 것이 있었다. 1992년 민주화 이후로는 대학 진학에 대한 욕구나 희망이 점차 증가하였다. 1995년의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폐지 이후로는 대학 진학률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청년층의 실업률을 높이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는 21세기 초, 어느 나라든 골머리 앓는 문제긴 하지만.[2] 일본의 경우 50대가 되도록 취직을 못하거나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2000년대 이후 크게 늘어났다. 단 이들은 사회불만화되지 않은 대신 점차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거나 몰입하는 쪽으로 변모해갔다.(오타쿠, 히키코모리 등) 다만 긍정적인 점이 있다면, 그들 또래 중 결혼한 또래들의 자녀 세대인 2010년대 현재 20대, 30대들은 인구 수가 확 줄어들어서 구인난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제점은 이런 일본의 거품 붕괴 때에 20대 30대를 보낸 신인류 세대 중 미취업자들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생활하고 있고, 그들의 부모가 죽었을 때에는 사회문제화될 우려가 높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자살과 묻지마 범죄, 분노 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 일본은 자살률이 계속 서서히 줄어들고 있고 범죄도 이민인구의 증가의 의한 범죄를 제외하면 줄고 있다.[3] 또 일본은 거품경제 당시 자산을 모아둔 사람들이 많아서 부모에 기생하고 있는 이들이 그들의 부모가 죽었다고 해도 상속으로 버틸 수 있고(실제로 그걸 기대하기 때문에 취업을 안 하는 면도 크다.) 또 받을 재산이 없다고 해도 지금 워낙 일본이 구직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나이 먹고 알바 같은 일자리를 하기 창피하기는 해도 먹고사는 것 자체는 큰 문제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부모들 역시 자녀들을 과잉보호하여, 세상의 어두운 면을 말해주지 않는다. 사회에 갓 진출한 청년층이 부조리나 부당한 대우에 협상, 조절보다는 적응을 못하고 쉽게 이직하거나 퇴직을 하게 된다. 또한 양보나 타협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패배로 인정하는 성향 역시 강해졌다. 그런 청년층이 모두 인내심이 없어서 일주일 만에 때려치우고, 한 달 만에 때려치우는 것만은 아니다.[4] 점점 썼던 사람을 또 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노동을 거부하거나 구직, 취직을 거부하는 청년층을 제외하더라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청년들도 있으나 정규직과 달리 소득 및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고통받는 청년이 늘고 있다.
제조업, 건설업, 중소기업 생산직 등은 인력이 모자라서 난리지만 그렇다고 힘든 일을 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체력이 되지 않아 골병이 들어서 약값, 진료비가 더 나오거나, 예를 들자면 갑작스러운 무리한 일로 인대가 늘어난다거나 근육통 등, 멘붕 후 그만두게 된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력서를 넣더라도 힘들고 열악한 일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준의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것을 보는 이상 불쾌감과 짜증이 밀려온다. 월급 외에 주는 보너스와 상여금은 보통 그 공장에 취직한 후, 6개월이 지나야 지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빠르면 3개월만 경과해도 주기는 한다.
계속되는 구직 실패, 혹은 열악한 일자리, 주변의 시선과 편견, 불필요한 오지랖 등으로 인한 상시적 스트레스로 인해 구직을 포기하고 니트족이나 캥거루족으로 전향하거나 구직 스트레스로 인해 얻은 우울증, 조울증, 정서불안, 공황장애 등을 호소하는 청년이 늘고 있는 한편으로, 기존의 질병이 더욱 심각해지는 케이스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도박, 자살, 범죄를 선택하는 극단적인 청년들도 나타나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최소한의 삶, 안분지족, 복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조건 비딱하게 보는 기성세대와 높으신 분들의 고정관념과 편견 역시 청년층을 정서적으로 궁지,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바꿔 말하면 청년층이 기성세대가 그동안 얼마나 착취와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지 직시하고 있어 분노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이 단어의 문제점은 구직할 마음이 없는 청년, 일할 능력이 되지 않는 청년층의 존재를 외면하거나 무시한다는 점이다. 질낮고 열악한 일자리인 제조업쪽 생산직은 넘쳐나지만, 인권의식과 기본권, 권리 등에 민감한 선진국과 중진국에서는 그러한 일자리를 점점 기피하는 추세다. 각국의 정부에서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대기업에 인턴이라는 자리를 만들어서 일시적이나마 취직할 시간 또는 취업하는데 필요한 스펙을 쌓는 유예기간을 주기는 한다. 한국은 2006년부터 인턴제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기간 중 청년층의 욕구에 맞는 일자리를 그 시간 중에 찾지 못한다면 임시방편, 단기적 해결책에 불과하게 된다. 물론 청년실업 문제는 전세계가 풀어갈 숙제이긴 하다. 그러나 합리적인 근거로 자발적으로 비취직, 비취업을 선택한 것이라면 그 청년의 선택도 존중해줘야 될 필요가 있다.
그 밖에 한국은 IMF 사태 이전의 고도성장기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못 버리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큰 문제점이다. 신용카드 과다 사용으로 인한 카드 빚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010년 이후 등장한 기계화와 자동화, 인공지능 등은 한세대 뒤, 늦어도 50년 정도 지나면 시중 상용화가 예상된다.[5] 이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대비하여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등장, 2000년 이후로 진지하게 논의되는 중이다.[6] 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인 2000년대 초반에는 기본소득제에 대해 공짜로 돈만 받으려 한다, 정부에 과도한 의존이라는 등의 비판이 더 많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불황의 장기화, 만성화된 경제위기와 취업난, 구직난, 고학력화, 빈곤, 그리고 바뀌지 않는 사농공상적 가치관, 직업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그러한 비판도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1990년대 이후 나타난 IMF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국제적 금융 위기를 겪으며 경제 성장률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장기적인 경제 침체 현상이 일어났다. 그 이후 기업들은 투자보다 안정에 중점을 두게 되었고 사람을 많이 뽑지 않아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수요를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청년층이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고령자의 산업현장 재진입, 재취업 등 부모세대나 기성세대가 산업현장에 예전보다 더 오래 근무하고, 늦게 은퇴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규자를 채용할 이유가 서서히 사라져갔고, 그 결과로 자녀는 부모에게 더 오래 의존하는 형태로 사회 구조가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일정 연령을 지났거나, 정년퇴직 이후에도 재채용되는 이들에 대해 임금피크제라는 대안을 계획하고 있다.
처음 취직, 노동 진입연령의 상승도 자연스럽게 산업현장에서 청년 보기가 힘든 환경을 불러왔다. 보통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에 취직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당시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은 아니라서[1],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학교 졸업하고도 취직하거나, 고등학교 중퇴도 있었다. 보통 20대 초반이면 취직하고, 3~5년 정도 지나면 여성은 주임, 대리급, 남성은 군 복무 후 20대 후반이면 대리나 주임, 반장 등의 직급을 얻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1987년 군사독재정권 몰락 이후, 해외 여행, 해외 유학이 자유롭게 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일상을 보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을 통해 전해지고 전달되는 것이 있었다. 1992년 민주화 이후로는 대학 진학에 대한 욕구나 희망이 점차 증가하였다. 1995년의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폐지 이후로는 대학 진학률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청년층의 실업률을 높이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는 21세기 초, 어느 나라든 골머리 앓는 문제긴 하지만.[2] 일본의 경우 50대가 되도록 취직을 못하거나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2000년대 이후 크게 늘어났다. 단 이들은 사회불만화되지 않은 대신 점차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거나 몰입하는 쪽으로 변모해갔다.(오타쿠, 히키코모리 등) 다만 긍정적인 점이 있다면, 그들 또래 중 결혼한 또래들의 자녀 세대인 2010년대 현재 20대, 30대들은 인구 수가 확 줄어들어서 구인난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제점은 이런 일본의 거품 붕괴 때에 20대 30대를 보낸 신인류 세대 중 미취업자들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생활하고 있고, 그들의 부모가 죽었을 때에는 사회문제화될 우려가 높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자살과 묻지마 범죄, 분노 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 일본은 자살률이 계속 서서히 줄어들고 있고 범죄도 이민인구의 증가의 의한 범죄를 제외하면 줄고 있다.[3] 또 일본은 거품경제 당시 자산을 모아둔 사람들이 많아서 부모에 기생하고 있는 이들이 그들의 부모가 죽었다고 해도 상속으로 버틸 수 있고(실제로 그걸 기대하기 때문에 취업을 안 하는 면도 크다.) 또 받을 재산이 없다고 해도 지금 워낙 일본이 구직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나이 먹고 알바 같은 일자리를 하기 창피하기는 해도 먹고사는 것 자체는 큰 문제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부모들 역시 자녀들을 과잉보호하여, 세상의 어두운 면을 말해주지 않는다. 사회에 갓 진출한 청년층이 부조리나 부당한 대우에 협상, 조절보다는 적응을 못하고 쉽게 이직하거나 퇴직을 하게 된다. 또한 양보나 타협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패배로 인정하는 성향 역시 강해졌다. 그런 청년층이 모두 인내심이 없어서 일주일 만에 때려치우고, 한 달 만에 때려치우는 것만은 아니다.[4] 점점 썼던 사람을 또 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노동을 거부하거나 구직, 취직을 거부하는 청년층을 제외하더라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청년들도 있으나 정규직과 달리 소득 및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고통받는 청년이 늘고 있다.
제조업, 건설업, 중소기업 생산직 등은 인력이 모자라서 난리지만 그렇다고 힘든 일을 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체력이 되지 않아 골병이 들어서 약값, 진료비가 더 나오거나, 예를 들자면 갑작스러운 무리한 일로 인대가 늘어난다거나 근육통 등, 멘붕 후 그만두게 된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력서를 넣더라도 힘들고 열악한 일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준의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것을 보는 이상 불쾌감과 짜증이 밀려온다. 월급 외에 주는 보너스와 상여금은 보통 그 공장에 취직한 후, 6개월이 지나야 지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빠르면 3개월만 경과해도 주기는 한다.
계속되는 구직 실패, 혹은 열악한 일자리, 주변의 시선과 편견, 불필요한 오지랖 등으로 인한 상시적 스트레스로 인해 구직을 포기하고 니트족이나 캥거루족으로 전향하거나 구직 스트레스로 인해 얻은 우울증, 조울증, 정서불안, 공황장애 등을 호소하는 청년이 늘고 있는 한편으로, 기존의 질병이 더욱 심각해지는 케이스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도박, 자살, 범죄를 선택하는 극단적인 청년들도 나타나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최소한의 삶, 안분지족, 복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조건 비딱하게 보는 기성세대와 높으신 분들의 고정관념과 편견 역시 청년층을 정서적으로 궁지,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바꿔 말하면 청년층이 기성세대가 그동안 얼마나 착취와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지 직시하고 있어 분노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이 단어의 문제점은 구직할 마음이 없는 청년, 일할 능력이 되지 않는 청년층의 존재를 외면하거나 무시한다는 점이다. 질낮고 열악한 일자리인 제조업쪽 생산직은 넘쳐나지만, 인권의식과 기본권, 권리 등에 민감한 선진국과 중진국에서는 그러한 일자리를 점점 기피하는 추세다. 각국의 정부에서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대기업에 인턴이라는 자리를 만들어서 일시적이나마 취직할 시간 또는 취업하는데 필요한 스펙을 쌓는 유예기간을 주기는 한다. 한국은 2006년부터 인턴제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기간 중 청년층의 욕구에 맞는 일자리를 그 시간 중에 찾지 못한다면 임시방편, 단기적 해결책에 불과하게 된다. 물론 청년실업 문제는 전세계가 풀어갈 숙제이긴 하다. 그러나 합리적인 근거로 자발적으로 비취직, 비취업을 선택한 것이라면 그 청년의 선택도 존중해줘야 될 필요가 있다.
그 밖에 한국은 IMF 사태 이전의 고도성장기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못 버리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큰 문제점이다. 신용카드 과다 사용으로 인한 카드 빚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010년 이후 등장한 기계화와 자동화, 인공지능 등은 한세대 뒤, 늦어도 50년 정도 지나면 시중 상용화가 예상된다.[5] 이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대비하여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등장, 2000년 이후로 진지하게 논의되는 중이다.[6] 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인 2000년대 초반에는 기본소득제에 대해 공짜로 돈만 받으려 한다, 정부에 과도한 의존이라는 등의 비판이 더 많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불황의 장기화, 만성화된 경제위기와 취업난, 구직난, 고학력화, 빈곤, 그리고 바뀌지 않는 사농공상적 가치관, 직업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그러한 비판도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2. 중소기업/구인난[편집]
한국의 대부분 중소기업의 직원 구인난의 원인은 아래에 서술하여 여러가지가 있다. 단 한가지로 단언할 수 없지만 총합하자면 급여는 급여대로 낮으며, 근로시간은 근로시간대로 길고, 복지는 복지대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자면 중소기업의 위치는 대부분 공업단지에 있거나,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기 불편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자신의 집에서 직장까지 출근에 1시간, 퇴근에 1시간 총 하루에 2시간씩 도로위에 버리게 되면서 출퇴근에 스트레스와 하루 시간낭비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실질 근무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하루 8시간 근무를 한다고 해도 출퇴근 2시간을 포함하면 총 10시간이다. 그것 뿐만 아니라 일부 중소기업은 8시 출근 6시퇴근 일일 총 9시간 근무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회사를 위해서 사용하는 총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공업단지는 주로 남초사회이기 때문에 여성과 연애하기가 어렵고 결국 연애도 결혼도 하기가 어렵다. 연애할 대상도 없는데 시간은 시간대로 없어, 결국 노총각이 되는 급행열차이다. 이렇게 되면 여성 역시 결혼할 남자들이 다 지방에 있거나 외지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남성이 부족하게 되니 결혼하기 어려워진다.
저급여, 통근하기 어려운 위치, 출퇴근 시간으로 인해 길어진 근로시간 이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중소기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국가를 경영한 정치인 및 관료들의 명백한 정책적 실패이다.
그 동안 베이비 붐 세대와 에코붐 세대로 중소기업에 인원이 그나마 공급되는 편이였지만, 2022년 엄청난 저출산과 비혼주의로 앞으로 한국의 중소기업은 더욱더 심각한 구인난에 몰릴 예정으로 보인다.
사실상 대한민국 취업난의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피현상은 구직자 잘못이 아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고 열정페이랑 애사심으로 굴려대는 기업과 국가가 가장 큰 잘못이다.
단, 여기서 국가가 가장 큰 잘못이라는 말에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실제 본 문단의 링크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하여 최저임금 인상,법적 계도의 강화,52시간제의 시행등으로 국가가 대처한 결과는 유의미한 실업률의 상승이라는 실증적 결과로 나타났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는 '청년층 자본형성'이라는 미명아래 개인이 저축한 만큼 국가에서 채워주는(사실상 부의 무상이전) 청년내일적금등의 방안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러한 국가의 노력은 청년층의 유의미한 취업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며, 사실상 '나이'라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속성을 기준삼아 '차별적으로' '심각하게 우대가 되는' 부의 이전(그것도 타 계층에서 착취한 세금이 재원이다)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있다.
사실 본 문단 링크의 문제해결만을 위한다면, 그리고 국부상승과 수출증대, 경쟁력상승이라는 측면을 본다면 가장 합리적이고 부담이 가지않는일은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서, 100만원짜리 일자리에 꽂는것이다. 이는 베트남등의 임금이 싼 지역으로의 공장이전을 막아 수출을 통한 국내총생산증가에 기여하고,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증대시키며 이렇게 얻어지는 잉여로 자본을 축적하여 기술집약적 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 사실 7080산업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는것 뿐이기 때문이다.
구직자 입장에서 중소기업 생산직/영업직을 외면하고 대기업, 외국계, 공기업의 사무직을 선호할 만한 이유는 너무 당연해서 굳이 적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야말로 대기업/공기업/외국계에서 뽑아만 준다면 몰려가고 싶어질 정도다. 간략히 말하자면, 그만큼 취직 후의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대기업이나 공무원 말단직이라 해도 일단 주변 취급부터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정도다(...) 어쨌든 문서 진행상 간략히 서술하자면, 중소기업 생산직/영업직은 근로조건, 사내문화, 처우가 대단히 열악한데 이런 열악한 일자리가 취업시장에 다수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물론 강소기업이나 우수 중소기업같이 처우와 보수도 일반기업 못지않은곳도 있으나, 소수일 뿐이다. 특히 중소기업이라는 이미지와 사회인식, 홍보부족 등으로 이런 기업이 있다고 해도 고스펙 대졸자들은 대부분 대기업/공기업/공단/외국계회사같은곳 취업을 희망한다. 중소기업/구인난, 블랙기업 문서 참조.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자면 중소기업의 위치는 대부분 공업단지에 있거나,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기 불편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자신의 집에서 직장까지 출근에 1시간, 퇴근에 1시간 총 하루에 2시간씩 도로위에 버리게 되면서 출퇴근에 스트레스와 하루 시간낭비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실질 근무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하루 8시간 근무를 한다고 해도 출퇴근 2시간을 포함하면 총 10시간이다. 그것 뿐만 아니라 일부 중소기업은 8시 출근 6시퇴근 일일 총 9시간 근무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회사를 위해서 사용하는 총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공업단지는 주로 남초사회이기 때문에 여성과 연애하기가 어렵고 결국 연애도 결혼도 하기가 어렵다. 연애할 대상도 없는데 시간은 시간대로 없어, 결국 노총각이 되는 급행열차이다. 이렇게 되면 여성 역시 결혼할 남자들이 다 지방에 있거나 외지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남성이 부족하게 되니 결혼하기 어려워진다.
저급여, 통근하기 어려운 위치, 출퇴근 시간으로 인해 길어진 근로시간 이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중소기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국가를 경영한 정치인 및 관료들의 명백한 정책적 실패이다.
그 동안 베이비 붐 세대와 에코붐 세대로 중소기업에 인원이 그나마 공급되는 편이였지만, 2022년 엄청난 저출산과 비혼주의로 앞으로 한국의 중소기업은 더욱더 심각한 구인난에 몰릴 예정으로 보인다.
사실상 대한민국 취업난의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피현상은 구직자 잘못이 아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고 열정페이랑 애사심으로 굴려대는 기업과 국가가 가장 큰 잘못이다.
단, 여기서 국가가 가장 큰 잘못이라는 말에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실제 본 문단의 링크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하여 최저임금 인상,법적 계도의 강화,52시간제의 시행등으로 국가가 대처한 결과는 유의미한 실업률의 상승이라는 실증적 결과로 나타났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는 '청년층 자본형성'이라는 미명아래 개인이 저축한 만큼 국가에서 채워주는(사실상 부의 무상이전) 청년내일적금등의 방안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러한 국가의 노력은 청년층의 유의미한 취업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며, 사실상 '나이'라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속성을 기준삼아 '차별적으로' '심각하게 우대가 되는' 부의 이전(그것도 타 계층에서 착취한 세금이 재원이다)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있다.
사실 본 문단 링크의 문제해결만을 위한다면, 그리고 국부상승과 수출증대, 경쟁력상승이라는 측면을 본다면 가장 합리적이고 부담이 가지않는일은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서, 100만원짜리 일자리에 꽂는것이다. 이는 베트남등의 임금이 싼 지역으로의 공장이전을 막아 수출을 통한 국내총생산증가에 기여하고,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증대시키며 이렇게 얻어지는 잉여로 자본을 축적하여 기술집약적 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 사실 7080산업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는것 뿐이기 때문이다.
구직자 입장에서 중소기업 생산직/영업직을 외면하고 대기업, 외국계, 공기업의 사무직을 선호할 만한 이유는 너무 당연해서 굳이 적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야말로 대기업/공기업/외국계에서 뽑아만 준다면 몰려가고 싶어질 정도다. 간략히 말하자면, 그만큼 취직 후의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대기업이나 공무원 말단직이라 해도 일단 주변 취급부터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정도다(...) 어쨌든 문서 진행상 간략히 서술하자면, 중소기업 생산직/영업직은 근로조건, 사내문화, 처우가 대단히 열악한데 이런 열악한 일자리가 취업시장에 다수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물론 강소기업이나 우수 중소기업같이 처우와 보수도 일반기업 못지않은곳도 있으나, 소수일 뿐이다. 특히 중소기업이라는 이미지와 사회인식, 홍보부족 등으로 이런 기업이 있다고 해도 고스펙 대졸자들은 대부분 대기업/공기업/공단/외국계회사같은곳 취업을 희망한다. 중소기업/구인난, 블랙기업 문서 참조.
3. 자연환경적 요인[편집]
시계열 분석을 할 때는 계절적인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2월 취업자수 증가폭 둔화에 대해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제조업이나 농림어업의 취업자수 증가폭이 크게 둔화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이라며 "2월에 강추위와 폭설로 인한 경제활동 저하가 취업자수 증가폭 둔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월 취업자수 감소에 대해 이호승 비서관은 "매달 15일이 속한 일주일을 고용 통계의 기준으로 삼는데 5월에는 이 기간에 봄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며 "그 영향으로 건설 일용직 일자리가 줄었다"고 밝혔다.
7월 취업자 수 증가폭 둔화에 대해 빈현준 고용통계과장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연초부터 적용됐기 때문에 이번 달 증가폭 둔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예년을 봤을 때 취업자 수에 최저임금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지 않다”며 “이번에 폭염으로 인해 날씨가 좀 더웠고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이 늘면서 숙박음식 등에 영향 준 게 아닌가 보여진다”고 말했다.
2월 취업자수 증가폭 둔화에 대해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제조업이나 농림어업의 취업자수 증가폭이 크게 둔화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이라며 "2월에 강추위와 폭설로 인한 경제활동 저하가 취업자수 증가폭 둔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월 취업자수 감소에 대해 이호승 비서관은 "매달 15일이 속한 일주일을 고용 통계의 기준으로 삼는데 5월에는 이 기간에 봄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며 "그 영향으로 건설 일용직 일자리가 줄었다"고 밝혔다.
7월 취업자 수 증가폭 둔화에 대해 빈현준 고용통계과장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연초부터 적용됐기 때문에 이번 달 증가폭 둔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예년을 봤을 때 취업자 수에 최저임금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지 않다”며 “이번에 폭염으로 인해 날씨가 좀 더웠고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이 늘면서 숙박음식 등에 영향 준 게 아닌가 보여진다”고 말했다.
4. 사회구조의 변화[편집]
4.1. 기술적 실업[편집]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 생산자동화 개념의 도입으로, 산업이 고도화되며 인력이 많이 필요없는 고용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가능하게 되었다.
4.2. 사회 진출 연령대의 상승[편집]
사회진출 연령대의 상승이 청년의 실업, 실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산업현장에 진출하는 청년의 수가 감소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대학 진학이 보편화되는 고학력화와 함께 사회에 첫 데뷔하는 연령, 즉 처음 정식으로 취직하는 연령(아르바이트는 일반적으로 제외된다.) 도 그만큼 올라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나 중,고등학교 통합 과정을 졸업하면 보통 연령대는 18세~19세가 된다. 그러나 대학을 진학하게 되면 단과대학 과정인 College에 진학한다면 2년에서 3년이 지나므로, 21세~22세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빨라도 20세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4년제 대학교인 University로 진학하게 된다면 23세~24세에 처음 이력서를 들고 구직시장에 나오게 된다. 만약 어떤 군면제자가 재수, 휴학, 검정고시 등의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고교 졸업시 19세, 2년제 전문대 21세, 3년제 전문대 22세, 4년제 대학 졸업시 23세가 될 것이다. 만약 군필이라면 2~3년이 추가되어 각각 21~22세, 23~24세, 24~25세, 25~26세가 될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졸업 직후~졸업 1년 내에 취업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전근대사회만 해도, 한국은 1980년대까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에 취직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당시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은 아니라서[7],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학교 졸업하고도 취직하거나, 고등학교 중퇴도 있었다. 보통 20대 초반이면 취직하고, 3~5년 정도 지나면 여성은 주임, 대리급, 남성은 군 복무 후 20대 후반이면 대리나 주임, 반장 등의 직급을 얻었다.
그러나 1987년 군사독재정권의 몰락 이후, 해외 여행, 해외 유학이 자유롭게 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일상을 보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을 통해 정보가 전해지고 전달되는 것이 있었다. 군사독재정권이 정보를 통제하던 이전과는 달리, 1992년 민주화 이후로는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욕구나 희망이 점차 증가하였다. 1995년의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폐지 이후로는 대학 진학률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보통 고3의 80% 정도가 대학을 간다고 보고 있다. 만 18살에 칼입학하는 비율이 80%이기 때문에, 재수나 사회생활을 하다 늦게 대학에 가는 인원까지 합한 생애진학률은 90% 이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연령대가[8] 여성의 경우 전문대를 졸업하면 22~23세,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24~25세이다. 남성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복무 기간을 합치면 24~25세,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26~27세 정도 된다. 여기에 재수생의 존재도 급증하고 있어, 빨라도 여성은 전문대 졸업 후 23~24세, 남성은 군대를 포함해서 26~27세, 남성이면서 군대를 다녀온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복무 기간을 합치면 빨라도 28~29세가 된다. 남성의 경우 군대입대 시기와 휴학과 복학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다시 1~2년의 시간을 더 허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남성의 경우 30대 초반에 사회에 첫 데뷔[9]하는 것이 보통이고, 빨라도 26~27세는 되어야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여기에 2009년 무렵에는 일찍 과정을 마쳤다 해도 졸업유예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무리 빨라도 30대 초반에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다른 선진국들은 이 나이대가 되면 집안 가장이 되고 자녀까지 가지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백수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더 나아가서 결혼 연령대 상승, 저출산의 원인으로 이어진다.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인권의식의 확산과 함께, 부모들은 자신들이 고생한 것처럼 자식들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도 심화되었다.[10]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는 국회의원 업적, 시장님 치적을 남기기 위해 너도나도 대학 유치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대학교의 수는 폭증했으며, 대학 진학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와 가계부채가 폭증했어도 대학 유치 열기, 대학 진학 열풍은 막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하던 1987년 이전과는 달리 1987년 이후부터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증가, 고3 때 수능시험을 망치게 되면 1년에서 2년 재수하는 일 증가, 남성은 군대 복무로 인한 경력단절상태 등으로 IMF 구제금융이 터지던 시점에 가서는 남성은 27, 28세 무렵, 여성은 23~25세 무렵부터 처음 취직을 하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에 처음 사회에 진출하게 되지만, 취업 시장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경력직 채용, 고령자 우대, 퇴직자를 다시 고용하는 데다가 임금피크제는 기성 노동자들의 반발로 기업에서는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나오게 된다. 이래저래 청년층이 취직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근로환경 열악하고 박봉인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대신 공기업, 대기업, 공무원으로 몰리는 현상 증가, 장기간의 채용, 임용시험 준비생인 장수생의 증가, 자신이 고생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진 부모들도 어느정도 심리적으로 이해하면서 첫 취직 연령은 점점 상승하였다. 2000년대 중반에 와서는 중소기업 생산직 중에는 20대, 30대를 찾아보는 게 희귀한 현상이 되었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정식 취직, 정식 직장으로 처음 사회에 데뷔하는 나이는 1980년대의 20세 전후에서, 1997년 무렵에는 20대 후반으로, 2010년대에 와서는 30대 초반으로 점점 상승하였다.
점차적으로 신규자 채용과 신규자 채용 후 수습하는 데 드는 시간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일부 기업체에서는 경력직만을 채용하게 되므로, 청년층은 휴학이나 대학 재학을 연장하는 등으로 졸업을 최대한 뒤로 미루기도 한다. 혹은 대도시는 정보력도 있고 교통편도 편리해서, 당분간 기술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그 결과 청년층의 사회 첫 데뷔 시기는 점차적으로 늦춰지게 된다.
대학 진학이 보편화되는 고학력화와 함께 사회에 첫 데뷔하는 연령, 즉 처음 정식으로 취직하는 연령(아르바이트는 일반적으로 제외된다.) 도 그만큼 올라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나 중,고등학교 통합 과정을 졸업하면 보통 연령대는 18세~19세가 된다. 그러나 대학을 진학하게 되면 단과대학 과정인 College에 진학한다면 2년에서 3년이 지나므로, 21세~22세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빨라도 20세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4년제 대학교인 University로 진학하게 된다면 23세~24세에 처음 이력서를 들고 구직시장에 나오게 된다. 만약 어떤 군면제자가 재수, 휴학, 검정고시 등의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고교 졸업시 19세, 2년제 전문대 21세, 3년제 전문대 22세, 4년제 대학 졸업시 23세가 될 것이다. 만약 군필이라면 2~3년이 추가되어 각각 21~22세, 23~24세, 24~25세, 25~26세가 될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졸업 직후~졸업 1년 내에 취업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전근대사회만 해도, 한국은 1980년대까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에 취직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당시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은 아니라서[7],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학교 졸업하고도 취직하거나, 고등학교 중퇴도 있었다. 보통 20대 초반이면 취직하고, 3~5년 정도 지나면 여성은 주임, 대리급, 남성은 군 복무 후 20대 후반이면 대리나 주임, 반장 등의 직급을 얻었다.
그러나 1987년 군사독재정권의 몰락 이후, 해외 여행, 해외 유학이 자유롭게 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일상을 보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을 통해 정보가 전해지고 전달되는 것이 있었다. 군사독재정권이 정보를 통제하던 이전과는 달리, 1992년 민주화 이후로는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욕구나 희망이 점차 증가하였다. 1995년의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 폐지 이후로는 대학 진학률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보통 고3의 80% 정도가 대학을 간다고 보고 있다. 만 18살에 칼입학하는 비율이 80%이기 때문에, 재수나 사회생활을 하다 늦게 대학에 가는 인원까지 합한 생애진학률은 90% 이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연령대가[8] 여성의 경우 전문대를 졸업하면 22~23세,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24~25세이다. 남성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복무 기간을 합치면 24~25세,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26~27세 정도 된다. 여기에 재수생의 존재도 급증하고 있어, 빨라도 여성은 전문대 졸업 후 23~24세, 남성은 군대를 포함해서 26~27세, 남성이면서 군대를 다녀온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복무 기간을 합치면 빨라도 28~29세가 된다. 남성의 경우 군대입대 시기와 휴학과 복학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다시 1~2년의 시간을 더 허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남성의 경우 30대 초반에 사회에 첫 데뷔[9]하는 것이 보통이고, 빨라도 26~27세는 되어야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여기에 2009년 무렵에는 일찍 과정을 마쳤다 해도 졸업유예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무리 빨라도 30대 초반에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다른 선진국들은 이 나이대가 되면 집안 가장이 되고 자녀까지 가지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백수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더 나아가서 결혼 연령대 상승, 저출산의 원인으로 이어진다.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인권의식의 확산과 함께, 부모들은 자신들이 고생한 것처럼 자식들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도 심화되었다.[10]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는 국회의원 업적, 시장님 치적을 남기기 위해 너도나도 대학 유치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대학교의 수는 폭증했으며, 대학 진학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와 가계부채가 폭증했어도 대학 유치 열기, 대학 진학 열풍은 막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하던 1987년 이전과는 달리 1987년 이후부터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증가, 고3 때 수능시험을 망치게 되면 1년에서 2년 재수하는 일 증가, 남성은 군대 복무로 인한 경력단절상태 등으로 IMF 구제금융이 터지던 시점에 가서는 남성은 27, 28세 무렵, 여성은 23~25세 무렵부터 처음 취직을 하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에 처음 사회에 진출하게 되지만, 취업 시장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경력직 채용, 고령자 우대, 퇴직자를 다시 고용하는 데다가 임금피크제는 기성 노동자들의 반발로 기업에서는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나오게 된다. 이래저래 청년층이 취직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근로환경 열악하고 박봉인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대신 공기업, 대기업, 공무원으로 몰리는 현상 증가, 장기간의 채용, 임용시험 준비생인 장수생의 증가, 자신이 고생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진 부모들도 어느정도 심리적으로 이해하면서 첫 취직 연령은 점점 상승하였다. 2000년대 중반에 와서는 중소기업 생산직 중에는 20대, 30대를 찾아보는 게 희귀한 현상이 되었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정식 취직, 정식 직장으로 처음 사회에 데뷔하는 나이는 1980년대의 20세 전후에서, 1997년 무렵에는 20대 후반으로, 2010년대에 와서는 30대 초반으로 점점 상승하였다.
점차적으로 신규자 채용과 신규자 채용 후 수습하는 데 드는 시간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일부 기업체에서는 경력직만을 채용하게 되므로, 청년층은 휴학이나 대학 재학을 연장하는 등으로 졸업을 최대한 뒤로 미루기도 한다. 혹은 대도시는 정보력도 있고 교통편도 편리해서, 당분간 기술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그 결과 청년층의 사회 첫 데뷔 시기는 점차적으로 늦춰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