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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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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72회 작성일 23-02-1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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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70년대 미국의 연쇄살인범. 당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대표적인 인물로도 꼽힌다.[7]

타입을 나누자면 호감형 타입으로 '자신의 매력 속에 사악한 영혼을 감추는' 형태의 반사회성 성격장애 연쇄살인범. 외모도 좋고 지적이며 말도 어느 정도 잘해서 겉으로 보기에 연쇄살인범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매력적으로 보였으며 임기응변까지 뛰어났다. 그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숫자는 현재까지도 불명확하다. 30명이라는 주장도 있고, 어떤 범죄 전문가는 50명 이상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테드 번디 본인이 피해자의 수를 밝히겠다고 했지만, 사형을 원하던 유가족들의 요구를 검찰이 받아들여 그 제안을 거절했기에 진실은 지금도 미궁에 빠져 있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미국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태어났으며 유복한 집안 출신은 아니지만 매주 주일학교에 참석하는 등 평범해 보이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소시지 굽기, 낚시 하기, 크리스마스 휴가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실제 성장환경은 매우 비정상적이었다.

사생아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를 누나로 알고 자랐고, 당시 외조부모인 샘과 엘리너 코웰 부부가 그의 부모 역할을 하였다. 외조부 샘은 악의에 찬 인종차별주의자였고, 애완동물과 자신의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8] 누나로 알던 친모가 재혼하면서 외조부모에게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계부 또한 사생아인 그를 싫어하였고 친모는 계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챙기느라 그에게 냉담하였다. 그는 나중에서야 우연히 누나로 알던 사람이 친모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성장환경이 이런 상황이니 바르게 자라는게 신기할 지경일 것이다. 물론 이런 과거의 불우한 환경만으로 어른이 된 후 저지른 끔찍한 행동들을 옹호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의 뒤틀린 내면을 형성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테드 번디의 성장 환경을 보면, 어릴 때부터 명백한 정서불안 증세를 나타냈고, 겨우 3세 때 잠든 이모의 침대 이불 밑에 칼을 밀어 넣었다초등학교 시절엔 머리도 좋고 성적도 뛰어났지만, 반복해서 사납게 역정을 내는 성질 때문에 교사들은 불안에 떨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그는 이미 상습적 관음증 환자였으며, 좀도둑이 되어 있었다.

이 시기 동안 번디는 자신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데, 그건 자신에게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대표적인 특징인 양심, 타인을 욕망 충족을 위한 대상보다 우위에 두는 마음, 이타심 등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남들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관찰을 통해 그는 정상인들의 행동을 흉내 내는 법을 배우는 데 성공했다. 그 때문에 그가 살인죄로 잡히기 전까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그의 어두운 기질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1965년 고등학교 졸업 후, 퓨젯 사운드 대학교(University of Puget Sound)에서 1년간 공부한 뒤에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워싱턴 대학교로 편입한다. 그는 워싱턴 대학교의 대학생으로 다니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 공화당에 입당, 넬슨 록펠러[9]의 선거운동을 지원했으며 1972년 선거에서 워싱턴주 지사 다니엘 J. 에반스의 선거운동에도 참여,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2.2. 살인의 시작[편집]

2.2.1. 워싱턴주시애틀[편집]

번디는 대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다이앤 마조리 진 에드워즈(Diane Marjorie Jean Edwards)'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한다. 문제는 훗날 그의 범행 대상으로 삼은 피해 여성들의 상당수가 이 다이앤과 막연하게 닮았다는 것인데, 이는 실연의 상처가 그에게 범행 동기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유는 다이앤과 헤어지게 된 원인이 순수하게 성격차이나 갈등의 골이 깊어진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이앤은 테드 번디가 능력적인 면에서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별을 통보했다. 이는 테드 번디가 충분히 열등의식을 갖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여자에 대한 혐오감을 발생 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년 후 테드 번디는 다이앤을 우연히 만나는데, 그녀는 180도로 변한 테드 번디와 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테드 번디는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다이앤은 이를 받아준다. 하지만 테드 번디는 다이앤이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연락을 끊어 버린다. 그녀에게 복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테드 번디의 살인이 일어난다.

피해 여성들이 전 여자친구를 닮은 건 그저 테드 번디의 여성 취향으로 인한 것이다. 대학교 졸업 후, 일류 로스쿨을 가려다가 실패하고 퓨젓사운드 로스쿨 야간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다이앤에게 차이게 되고, 이로 인해 그의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그의 주된 살인 목표가 정해지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사귀었던 다이앤 같이 아름답고 지적인 여대생이었다.[10]

이후로 워싱턴주에 거주하는 동안, 엘리자베스 클래퍼라는 싱글맘과 함께 살고 있던 테드 번디는 결국 살인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1974년 1월에 18세 여성 카렌 스팍스의 아파트 반지하방에 침입해 살해하려던 살인미수 사건을 시작으로, 1974년 2월 린다 앤 힐리, 조잰 호킨스, 게일 맨슨, 수잔 랜코트, 로버타 캐슬린 파크스, 브렌다 볼, 스테파니 모리스 등등을 여러 달에 걸쳐서 최소 7명을 살해했다.[11] 더하여 동년 7월 축제 때에 데니스 내스런드와 재니스 오트라는 두 여성을 동시에 살해했으며, 이때 목격자에 의해 테드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경찰의 수사망에 잡히게 된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하고, 급기야 8월 동거했던 여자 친구인 엘리자베스 클레퍼는 수상한 모습을 보였던 테드 번디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그를 수사망에서 놓치고 만다.

2.2.2. 유타주솔트레이크 시티[편집]

이후 1974년 9월에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로 이사, 유타 대학 로스쿨에 등록하는데, 여기서도 그의 살인은 그치지 않았다. 이때 캐럴 다론치라는 여성에게도 접근했지만, 구사일생으로 그녀는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의 케이스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녀를 놓친 후, 분노한 테드 번디는 겨우 4시간 후, 데비 켄트라는 여성을 납치해서 살해한다.

결국 솔트레이크 시티에서도 멜리자 스미스, 낸시 윌콕스, 로라 에이미, 엘리스 잭슨, 베티 록우드 등등의 젊은 여성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얼마 뒤 토막 난 시신이 협곡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이때 단순히 유타주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콜로라도주까지 진출, 리사 워커, 엘리자베스 마틴, 헬렌 던컨, 미셀 그레이, 마가렛 파커 등 최소 5명이 넘는 희생자들을 살해했다. 1974년 11월에도 켈리 알렌, 레베카 가르시아 등 여성 2명에게도 다가가 살해하려 했으나 두 여성은 간신히 도주했고 몇시간뒤, 메리 리 카 다비스라는 23세 여성 역시 살해하려 했으나 이도 살인 미수에 그친다. 그러나, 74년 9월과 같이 이에 분노한 테드 번디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발버라 톰슨 이라는 여성을 살해한다.

1975년 3월 5일, 워싱턴주, 테일러 산에서 실종됐던 여성들의 시체들이 발견된다.

2.3. 두 번의 탈옥과 검거[편집]

그러한 번디의 살해 행각의 전환점이 1975년 8월 16일 밤에 찾아온다. 그날 밤 유타 고속도로에서 밥 헤이우드 순경은 전조등을 끄고 곡예운전을 하던 자동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얼음송곳, 여성 팬티스타킹으로 만든 복면, 수갑 등 의심스러운 물건을 발견한다. 번디는 그렇게 첫 번째 체포를 당한다.

이때 체포된 29살의 테드 번디는 자신이 1년도 더 전에 납치를 시도했던 캐럴 다론치에게 범인 지목을 받고 납치죄가 가중되어 1976년 2월 유죄가 선고되면서 15년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콜로라도 살인사건에 대한 추가 징후도 발견되어 1977년 1월 콜로라도로 이감, 그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2.3.1. 콜로라도에서 첫 번째 탈옥: 8일간[편집]

하지만 1977년 6월 7일,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법원 도서관 출입을 허락받고, 경비원이 담배 피우러 복도에 나간 사이, 도서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탈출했다. 하지만 8일 만에 다시 체포된다.

2.3.2. 두 번째 탈옥: 2개월간[편집]

그러나 같은 해 12월, 11kg를 감량하고 몰래 들여온 쇠톱으로 감방 천장 통풍구에 구멍을 내고 또다시 탈출한다. 그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미국 남부인 플로리다주 탤러해시까지 거처를 옮기는데, 옮기던 도중에도 제시카 그린, 산드라 콕스라는 두 여성을 납치했다가 풀어주었고, 몇주도 채 지나지 않아 셰릴 화이트라는 여성을 살해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다행히도 셰릴은 테드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탈출에 성공해 미수에 그쳤다.이후 탤러해시에서도 크리스티나 포드, 줄리 하퍼, 패트리샤 베리, 로살리 클라크 등의 여성이 잇따라 실종된다. 이때 그가 법정 진술도 거부할 만큼 끔찍한 사건들을 수차례 저지르게 된다. 이때 상당히 많은 미제사건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2.3.3. 플로리다에서 세 번째 검거[편집]

결국 1978년 2월 15일, 그는 12세 소녀 킴벌리 리치를 살해, 확인사살까지 한 뒤, 시신을 돼지우리에 버린 지 1주일 만에 도난차량을 몰고 다니다 붙잡힌다. 교통경찰은 그저 교통법 위반으로 그를 잡았을 뿐, 살인범인지는 몰랐다.

2.3.4. 플로리다의 구금자가 테드 번디로 확인[편집]

1978년 2월 21일, 수감 중이었던 테드 번디가 워싱턴의 옛 여자 친구인 엘리자베스에게 수신자 부담 전화를 걸게 되면서 경찰이 그들이 구금하고 있던 자가 바로 살인 혐의가 있는 탈주범, 테드 번디란 사실을 확신하게 됐고, 결정적으로 4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킴벌리 리치 살인사건의 사체가 발견된다. 이후 탤러해시 여대생 살인사건에서 발견한 치아 자국과 대조해서 증거를 확보한 후, 결국 7월 기소된다.

2.4. 재판: 사형 구형[편집]

결국 1979년 5월 9일부터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재판이 진행되었고, 이는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그는 연쇄살인[12]으로 재판을 받았고, 사법거래(사전형량조정제도)을 하는 쪽으로 변호인과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6월 1일 돌연 그는 사법거래(사전형량조정제도)을 거부하며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7월 24일, 배심원단의 6시간 30분 동안의 심리 끝에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실 테드 번디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의 희생자 수가 최소 30명, 최대 100명까지 추정되는 등 정확하지 않은 점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피해자들을 정확하게 밝혀 낼 수 있도록 협조하는 대가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제안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드 번디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변호했고, 그 결과 그의 정확한 범죄 내역 및 희생자 수, 발견되지 않은 시신의 위치 등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테드 번디도 바보는 아니라, 얼마 후에는 변호인단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미 어그로를 있는 대로 끈 상황이라 별 효과는 없어, 정신 이상 드립만 치다가 사형이 확정됐다. 물론 처음부터 변호인단의 전략대로 갔더라도 아동 살해까지 저지른 테드에게 플로리다 재판부 측이 과연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을 지는 의문.[13] 

2.5. 사형집행 연기시도[편집]

2.5.1. 독점기사 출판시도[편집]

1980년, 자신이 누명을 썼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뉴스위크의 신참 기자 스티븐과 그의 옛 상사, 휴 애네스워스와 만나 책을 내려고 시도한다. 이 내용은 2019년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로 만들어지게 된다.

2.5.2. FBI와의 협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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