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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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65회 작성일 23-03-03 15:28본문
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 등 근대적 형태의 인종차별은 근세 말 근대 초인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형성되었다. 특히 아프리카에 노예무역의 규모가 커지고 산업화된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 사이에는 골상학이라는 인종에 대한 유사과학이 등장하여 활발해졌다.
인종 차별사에서 유명한 것은 역시 19세기 중반까지도 노예제를 공식적으로 유지했고, 그 노예제를 둘러싼 여러 이유로 남북전쟁이라는 내전까지 치렀던 미국의 사례가 꼽힌다. 노예제 철폐에서 한 세기가 지난 1960년대까지도 주별 자립권과 인종 분리라는 미명하에 관습적인 차별이 이루어졌고, 현재도 하나의 사회적 이슈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제이기 때문. 따라서 여기서는 부득이 미국 및 몇몇 서구 선진국들로 주제를 한정하기로 한다.
보통 인종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부각된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경영 과정에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백인들은 인종 간의 관계를 위계서열화하여 자신들의 착취를 정당화했다. 그 인종 간의 차이는 우열 관계로 특히나 생득적인 우열 관계로 설명되어서, 예컨대 유색인종들은 IQ가 더 낮다느니,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종자들이라느니 하면서 백인들끼리의 자화자찬을 즐겼다. 따라서 이런 열등한 종자들과의 접촉은 하등의 좋을 것이 없고 생활하는 구역, 이용하는 교통 수단, 이용하는 식당, 앉는 자리, 취업 분야 등에서 아예 공식적으로 차별적 정책을 만들어서 확실하게 구분하려고 했다. 책 ‘사라, 버스를 타다’에서 묘사된 것처럼 버스에 유색인종을 위한 자리가 따로 있었던 시절이 있었고, 화장실도 유색인종 전용이 있었으며, 유색인종 전용 식당이 있는 등 현재의 기준으로 따지면 단체로 거품 물고 쓰러질 골때리는 정책들이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 보기에는 극심하게 차별적인 경향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홀로코스트의 충격에 치를 떨던 20세기 중엽의 지식인들은 나치 독일이 아리아인 중심주의에 골몰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인종 차별과 인종 개량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의 맥락에서 처음으로 설명이 시도되어서, 예컨대 "우리 영국인은 이렇게 좋지만 너희 그리스인은 저렇게 열등하지" 같은 식의 생각을 설명하는 방법을 인종 수준까지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1950년에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함께 미국의 정신분석학자들이 펴낸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라는 책에서는, 파시스트들이 인종 차별적 행태를 보이는 것을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 후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을 통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커진 미국 사회에서는 다민족 단합과 국가 발전을 위해 이제 더 이상 공식적인 인종 차별 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제도적 영역에서 흑인들과 라틴계 등에 대해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1967년의 흑인 폭동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듬해에 발표된 보고서 《Report of the National Advisory Commission on Civil Disorders》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Racism"이라는 단어가 공적인 의미를 갖고 정립되어 사용되었다. 이제 공공연히 "흑인 출입 금지", "채용 자격 조건: 백인일 것" 같은 식의 조건을 내거는 사례는 세간의 지탄과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은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고 느껴 왔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일단은 사라졌지만, 사적인 방식으로는 아직도 여전히 인종 간의 '미묘한(subtle)'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내 규정을 바꿔서 유색인이 취업 시 불이익을 받도록 만든다든지, 서비스 업종에서 유색인에겐 미묘하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든지 하는 방식이다. 사실 문화에서도 이런 면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화를 보자면 시리어스 맨이라든지 스트리트 킹, 아웃브레이크, 폴링 다운, 투혼, 퀘스트, 똑바로 살아라, 스타스키와 허치 등 유머도 아니고 차별적 발언을 하며 극딜하는 영화가 많다. 물론 반대로 특정 유색인종을 선호하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어 동양인이 일처리나 사원 관리 면에서 더 수월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동양인들을 위주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금지되었으니 이제 인종차별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인종, 다른 국적, 다른 문화가 부딪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인종차별은 존재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도 법적으로는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출신 성분으로 사람 차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어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꼬집기 힘들지만 존재하는 형태. 호주만 봐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백호주의 때문에 인종차별자가 널려있다. 법이 금한다 한들 사람 개개인이 가진 편견과 선입견(심지어 종교관이 들어간 경우도)을 강제할 도리는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때문에 부모나 주변인들의 인종차별적 마인드에 적잖은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아, 자신도 모르게 인종차별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금지되자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색인종을 고용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예로 흑인은 된다고 하는 대신 곱슬머리는 안 된다고 한다거나. 직접적으론 안 해도 간접적으로 인종차별적 언행을 에둘러 한다든가. 헝거 게임의 영화판에서 일부 캐릭터가 흑인으로 나오자 몇몇 팬들이 열폭한 일도 있다. 헝거 게임 시리즈의 경우, 만약 원작에서 캐릭터들이 명백하게 백인이나 동양인이었던 것을 흑인으로 바꿔버린 것이라면 캐릭터성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비판받는 게 당연하겠지만, 원작 헝거 게임은 등장인물이 무슨 인종이다를 딱 찝어서 정하지 않았다. 등장인물이 어떤 인종으로 나오더라도 별 시비 걸릴 거리가 없었던 상황.
더 최근엔 '불문주의적 인종차별(Color-blinded racism)'이라는 개념도 떠오르고 있다. 너도나도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다'라고 교육받고 살아오다 보니 아무도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좋은데[2], 그 결과 인종에 관련된 이야기 자체를 아예 사회적으로 묻어버리려고 하는 경향이다. 인종차별을 안 하려고 하다 보니 아예 인종에 대해서 처음부터 말을 안 꺼내게 되는 것. 특히 인종의 도가니를 표방하는 미국의 경우 "에이 왜 그래, 우리 모두 미국인이지 인종이 어딨어!"라고 말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장려되는데, 물론 기존의 인종차별보다는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 결과 유색인종들의 삶의 경험과 문화적 차이, 사회적 필요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서는 인종의 모자이크를 표방하는 캐나다가 그나마 더 낫다고 한다. 다문화주의를 국가적으로 장려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부모님의 언어를 배워서 집에서는 그 언어로 대화하라'고 가르치고, 파티를 할 때 각자의 민족적 요리를 준비해 온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럼 그쪽에서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3]
북미에서 대두되는 새로운 용어로는 '힙스터 인종차별(Hipster Racism)'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적이나 유머러스하거나 동정적인 척 하며 다른 인종이나 문화를 까내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리해서 은연 중에 인종 차별스러운 코멘트를 날리면서 "이건 풍자야"라면서 변명하는 것. 대표적으로 Rucka Rucka Ali가 있다. Diet Racism 영상으로.[4]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학술적 근거와 제도적 장치로 인종 차별을 막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인종간 평등이 아닌 특정 인종을 위한 특권을 부여하는 적극적 우대조치와 같은 역차별 역시 점점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5]
2020년 이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나마 감소하는 듯 하다가 인종차별 사건 비율이 역대 최악으로 돌아갔다. 물론, 피해자는 대부분이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과 비슷한 모습의 동아시아인과 동남아시아인이 상당수다.
인종 차별사에서 유명한 것은 역시 19세기 중반까지도 노예제를 공식적으로 유지했고, 그 노예제를 둘러싼 여러 이유로 남북전쟁이라는 내전까지 치렀던 미국의 사례가 꼽힌다. 노예제 철폐에서 한 세기가 지난 1960년대까지도 주별 자립권과 인종 분리라는 미명하에 관습적인 차별이 이루어졌고, 현재도 하나의 사회적 이슈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제이기 때문. 따라서 여기서는 부득이 미국 및 몇몇 서구 선진국들로 주제를 한정하기로 한다.
보통 인종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부각된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경영 과정에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백인들은 인종 간의 관계를 위계서열화하여 자신들의 착취를 정당화했다. 그 인종 간의 차이는 우열 관계로 특히나 생득적인 우열 관계로 설명되어서, 예컨대 유색인종들은 IQ가 더 낮다느니,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종자들이라느니 하면서 백인들끼리의 자화자찬을 즐겼다. 따라서 이런 열등한 종자들과의 접촉은 하등의 좋을 것이 없고 생활하는 구역, 이용하는 교통 수단, 이용하는 식당, 앉는 자리, 취업 분야 등에서 아예 공식적으로 차별적 정책을 만들어서 확실하게 구분하려고 했다. 책 ‘사라, 버스를 타다’에서 묘사된 것처럼 버스에 유색인종을 위한 자리가 따로 있었던 시절이 있었고, 화장실도 유색인종 전용이 있었으며, 유색인종 전용 식당이 있는 등 현재의 기준으로 따지면 단체로 거품 물고 쓰러질 골때리는 정책들이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 보기에는 극심하게 차별적인 경향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홀로코스트의 충격에 치를 떨던 20세기 중엽의 지식인들은 나치 독일이 아리아인 중심주의에 골몰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인종 차별과 인종 개량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의 맥락에서 처음으로 설명이 시도되어서, 예컨대 "우리 영국인은 이렇게 좋지만 너희 그리스인은 저렇게 열등하지" 같은 식의 생각을 설명하는 방법을 인종 수준까지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1950년에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함께 미국의 정신분석학자들이 펴낸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라는 책에서는, 파시스트들이 인종 차별적 행태를 보이는 것을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 후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을 통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커진 미국 사회에서는 다민족 단합과 국가 발전을 위해 이제 더 이상 공식적인 인종 차별 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제도적 영역에서 흑인들과 라틴계 등에 대해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1967년의 흑인 폭동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듬해에 발표된 보고서 《Report of the National Advisory Commission on Civil Disorders》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Racism"이라는 단어가 공적인 의미를 갖고 정립되어 사용되었다. 이제 공공연히 "흑인 출입 금지", "채용 자격 조건: 백인일 것" 같은 식의 조건을 내거는 사례는 세간의 지탄과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은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고 느껴 왔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일단은 사라졌지만, 사적인 방식으로는 아직도 여전히 인종 간의 '미묘한(subtle)'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내 규정을 바꿔서 유색인이 취업 시 불이익을 받도록 만든다든지, 서비스 업종에서 유색인에겐 미묘하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든지 하는 방식이다. 사실 문화에서도 이런 면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화를 보자면 시리어스 맨이라든지 스트리트 킹, 아웃브레이크, 폴링 다운, 투혼, 퀘스트, 똑바로 살아라, 스타스키와 허치 등 유머도 아니고 차별적 발언을 하며 극딜하는 영화가 많다. 물론 반대로 특정 유색인종을 선호하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어 동양인이 일처리나 사원 관리 면에서 더 수월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동양인들을 위주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금지되었으니 이제 인종차별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인종, 다른 국적, 다른 문화가 부딪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인종차별은 존재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도 법적으로는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출신 성분으로 사람 차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어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꼬집기 힘들지만 존재하는 형태. 호주만 봐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백호주의 때문에 인종차별자가 널려있다. 법이 금한다 한들 사람 개개인이 가진 편견과 선입견(심지어 종교관이 들어간 경우도)을 강제할 도리는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때문에 부모나 주변인들의 인종차별적 마인드에 적잖은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아, 자신도 모르게 인종차별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금지되자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색인종을 고용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예로 흑인은 된다고 하는 대신 곱슬머리는 안 된다고 한다거나. 직접적으론 안 해도 간접적으로 인종차별적 언행을 에둘러 한다든가. 헝거 게임의 영화판에서 일부 캐릭터가 흑인으로 나오자 몇몇 팬들이 열폭한 일도 있다. 헝거 게임 시리즈의 경우, 만약 원작에서 캐릭터들이 명백하게 백인이나 동양인이었던 것을 흑인으로 바꿔버린 것이라면 캐릭터성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비판받는 게 당연하겠지만, 원작 헝거 게임은 등장인물이 무슨 인종이다를 딱 찝어서 정하지 않았다. 등장인물이 어떤 인종으로 나오더라도 별 시비 걸릴 거리가 없었던 상황.
더 최근엔 '불문주의적 인종차별(Color-blinded racism)'이라는 개념도 떠오르고 있다. 너도나도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다'라고 교육받고 살아오다 보니 아무도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좋은데[2], 그 결과 인종에 관련된 이야기 자체를 아예 사회적으로 묻어버리려고 하는 경향이다. 인종차별을 안 하려고 하다 보니 아예 인종에 대해서 처음부터 말을 안 꺼내게 되는 것. 특히 인종의 도가니를 표방하는 미국의 경우 "에이 왜 그래, 우리 모두 미국인이지 인종이 어딨어!"라고 말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장려되는데, 물론 기존의 인종차별보다는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 결과 유색인종들의 삶의 경험과 문화적 차이, 사회적 필요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서는 인종의 모자이크를 표방하는 캐나다가 그나마 더 낫다고 한다. 다문화주의를 국가적으로 장려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부모님의 언어를 배워서 집에서는 그 언어로 대화하라'고 가르치고, 파티를 할 때 각자의 민족적 요리를 준비해 온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럼 그쪽에서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3]
북미에서 대두되는 새로운 용어로는 '힙스터 인종차별(Hipster Racism)'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적이나 유머러스하거나 동정적인 척 하며 다른 인종이나 문화를 까내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리해서 은연 중에 인종 차별스러운 코멘트를 날리면서 "이건 풍자야"라면서 변명하는 것. 대표적으로 Rucka Rucka Ali가 있다. Diet Racism 영상으로.[4]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학술적 근거와 제도적 장치로 인종 차별을 막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인종간 평등이 아닌 특정 인종을 위한 특권을 부여하는 적극적 우대조치와 같은 역차별 역시 점점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5]
2020년 이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나마 감소하는 듯 하다가 인종차별 사건 비율이 역대 최악으로 돌아갔다. 물론, 피해자는 대부분이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과 비슷한 모습의 동아시아인과 동남아시아인이 상당수다.
3. 사회심리학적 원인 분석[편집]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20세기 중엽에는 사람들의 인종차별을 추적하고 포착하기 위해 상당히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방식, 즉 "공공연한"[6] 인종차별을 연구했다. 예컨대 설문조사를 할 때 사람들에게 "귀하는 버스 좌석을 흑백 분리를 하는 데 동의하십니까?" 같은 문항들을 질문하는 식.(...) 그런데 이것이 그 당시만 해도 꽤나 적절하게 선정된 문항이었고, 또 실제로 사람들의 인종차별에 대해서 상당히 잘 드러내는 경향이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인권 의식이 성숙해지고 평등주의의 가치가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사람들이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런 문항들에다 전부 "아니오"라고만 응답하게 되었다. 설령 실제로는 내심 그런 걸 원할지라도, 겉으로는 "내가 나쁘게 보이면 안 될 텐데..."라고 생각하여 일부러 칭찬 받을 만한 쪽으로 응답하게 되는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Social Desirability Bias)이 작동한 것이다. 이래서야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은 존재하고, 기존의 설문지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면,[7]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사회심리학자들 중 일부는 설문지의 문항을 바꾸기로 했다. 데이비드 시어스(D.O.Sears)나 존 맥코나헤이(J.B.McConahay) 같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잔존해 있는 인종주의를 찾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들이 제시한 이론인 상징적 인종주의 이론(Symbolic Racism Theory)과 현대적 인종주의 이론(Modern Racism Theory)은[8] "인종주의는 이제 과거의 산물이다", "흑인들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 "흑인들은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다", "흑인들은 부당하게 많은 것을 받아 챙기고 있다" 인식을 질문했다. 이 질문지들은 흑인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 인종 차별적 정책에 대한 지지도, 유권자 투표 양상 등을 잘 예측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 이론은 비판도 굉장히 많이 받았다. 보수주의자면 무조건 비난 할 차별주의자냐는 것이다. 예컨대, 보수주의자들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공평하게 노력드립을 칠 수 있는 것인데, 흑인에게까지 노력드립을 쳤다고 인종 차별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 리 주심(L. Jussim), 필립 테틀록(P. Tetlock) 등 이런 불만을 제기하는 학자들의 공격은 일반인들의 짐작을 초월할 정도로 맹렬했고, 이 비판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설문지를 바꿀 게 아니라 연구 방식 자체를 바꾸기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 집단심리학 연구자인 존 도비디오(J. Dovidio)와 새뮤얼 개르트너(S. L. Gaertner)는 아직까지 잔존해 있는 인종주의를 찾기 위해 거꾸로 리버럴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들이 제시한 이론인 혐오적 인종주의 이론(Aversive Racism Theory)은[9] 인간의 태도에는 "겉 마음 다르고 속 마음 다르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속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무의식적이고 반사적이며 즉각적인 반응의 속도를 잴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활용된 것이 바로 "암묵적 연합 검사"(IAT; Implicit Association Test). 공공연한 차별 이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Implicit; Covert) 차별을 연구하려면 피검자의 반응속도를 밀리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혐오적 인종주의는 현대 사회심리학계에서 인종차별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하고 폭 넓게 합의된 이론적 조망이다. 이에 따르면, 심지어 자기 자신을 평등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리버럴들조차도 암묵적인 수준에서는 막연하게나마 인종 차별적인 경향을 보일 수 있다. 특히나 이들은 자신이 진심으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 도덕적이고 선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10] 유색인종에 대해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Negative Thoughts and Feelings)을 갖고 있으며, 상황이 애매모호하고 다른 동기로 위장이 가능할 때 이를 저도 모르게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들은 대학교 신입생 선발, 신입 직원 채용, 배심원 판단, 인종 간 도움 행동[11]을 배경으로 이를 확인해 왔다. 이 분야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인종 차별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평소에 인종 차별주의자들은 상종 못 할 인간이라고 한 사람들이 실제로 인종 차별적인 말을 한 사람과는 잘만 일했다는 내용. 물론 이에 대해서도 비판은 있어서, 암묵적으로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인종 차별만 가지고 어떻게 우리 사회에 차별이 "만연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미시공격성(Microaggression)이라는 새로운 용어도 학계에 나타났다. 당초 이것은 언중 사이에서 알음알음 쓰이던 것인데[12] 이것이 상담심리학계로 흘러들고, 다시 사회심리학계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 상담심리학자들은 점점 더 많은 상담가들이 인종적 차별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유색인종 내담자들을 만나고 있음을 발견했고, 또 그만큼이나 상담 도중에 상담가가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한 마디 말에 이중의 상처를 받고 돌아가는 내담자들도 존재함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결국 이들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소소하고 일상적인 차별의 경험을 담아낼 이론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접근의 방식을 달리하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야 했던 것. 이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상황이 애매모호하고 다른 동기로 위장이 가능할 때" 은근슬쩍 드러나는 차별에 대해서도 유색인종 등의 사회적 약자들은 큰 고통을 느낀다. 그냥 덮어놓고 이것저것 "이거 나만 불편해?" 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빠르게 스치는 대화 속에서 '뭐지? 방금 그거 날 차별하는 게 맞나?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웃고 넘길까? 내가 과민하게 보이면 어쩌지? 내가 제지해도 효과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대응할 때를 놓치는[13] 상황을 설명하는 게 바로 미시공격성 이론이다. 하지만 양적 연구 및 과학성에 대한 거부와 불분명한 개념 정의, 질적 연구 특유의 주관성, 일반화 문제, 그리고 성급한 훈련 프로그램 개발로 인하여 비판도 많이 받고 있는[14] 미완의 이론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은 존재하고, 기존의 설문지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면,[7]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사회심리학자들 중 일부는 설문지의 문항을 바꾸기로 했다. 데이비드 시어스(D.O.Sears)나 존 맥코나헤이(J.B.McConahay) 같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잔존해 있는 인종주의를 찾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들이 제시한 이론인 상징적 인종주의 이론(Symbolic Racism Theory)과 현대적 인종주의 이론(Modern Racism Theory)은[8] "인종주의는 이제 과거의 산물이다", "흑인들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 "흑인들은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다", "흑인들은 부당하게 많은 것을 받아 챙기고 있다" 인식을 질문했다. 이 질문지들은 흑인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 인종 차별적 정책에 대한 지지도, 유권자 투표 양상 등을 잘 예측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 이론은 비판도 굉장히 많이 받았다. 보수주의자면 무조건 비난 할 차별주의자냐는 것이다. 예컨대, 보수주의자들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공평하게 노력드립을 칠 수 있는 것인데, 흑인에게까지 노력드립을 쳤다고 인종 차별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 리 주심(L. Jussim), 필립 테틀록(P. Tetlock) 등 이런 불만을 제기하는 학자들의 공격은 일반인들의 짐작을 초월할 정도로 맹렬했고, 이 비판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설문지를 바꿀 게 아니라 연구 방식 자체를 바꾸기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 집단심리학 연구자인 존 도비디오(J. Dovidio)와 새뮤얼 개르트너(S. L. Gaertner)는 아직까지 잔존해 있는 인종주의를 찾기 위해 거꾸로 리버럴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들이 제시한 이론인 혐오적 인종주의 이론(Aversive Racism Theory)은[9] 인간의 태도에는 "겉 마음 다르고 속 마음 다르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속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무의식적이고 반사적이며 즉각적인 반응의 속도를 잴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활용된 것이 바로 "암묵적 연합 검사"(IAT; Implicit Association Test). 공공연한 차별 이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Implicit; Covert) 차별을 연구하려면 피검자의 반응속도를 밀리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혐오적 인종주의는 현대 사회심리학계에서 인종차별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하고 폭 넓게 합의된 이론적 조망이다. 이에 따르면, 심지어 자기 자신을 평등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리버럴들조차도 암묵적인 수준에서는 막연하게나마 인종 차별적인 경향을 보일 수 있다. 특히나 이들은 자신이 진심으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 도덕적이고 선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10] 유색인종에 대해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Negative Thoughts and Feelings)을 갖고 있으며, 상황이 애매모호하고 다른 동기로 위장이 가능할 때 이를 저도 모르게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들은 대학교 신입생 선발, 신입 직원 채용, 배심원 판단, 인종 간 도움 행동[11]을 배경으로 이를 확인해 왔다. 이 분야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인종 차별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평소에 인종 차별주의자들은 상종 못 할 인간이라고 한 사람들이 실제로 인종 차별적인 말을 한 사람과는 잘만 일했다는 내용. 물론 이에 대해서도 비판은 있어서, 암묵적으로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인종 차별만 가지고 어떻게 우리 사회에 차별이 "만연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미시공격성(Microaggression)이라는 새로운 용어도 학계에 나타났다. 당초 이것은 언중 사이에서 알음알음 쓰이던 것인데[12] 이것이 상담심리학계로 흘러들고, 다시 사회심리학계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 상담심리학자들은 점점 더 많은 상담가들이 인종적 차별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유색인종 내담자들을 만나고 있음을 발견했고, 또 그만큼이나 상담 도중에 상담가가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한 마디 말에 이중의 상처를 받고 돌아가는 내담자들도 존재함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결국 이들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소소하고 일상적인 차별의 경험을 담아낼 이론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접근의 방식을 달리하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야 했던 것. 이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상황이 애매모호하고 다른 동기로 위장이 가능할 때" 은근슬쩍 드러나는 차별에 대해서도 유색인종 등의 사회적 약자들은 큰 고통을 느낀다. 그냥 덮어놓고 이것저것 "이거 나만 불편해?" 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빠르게 스치는 대화 속에서 '뭐지? 방금 그거 날 차별하는 게 맞나?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웃고 넘길까? 내가 과민하게 보이면 어쩌지? 내가 제지해도 효과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대응할 때를 놓치는[13] 상황을 설명하는 게 바로 미시공격성 이론이다. 하지만 양적 연구 및 과학성에 대한 거부와 불분명한 개념 정의, 질적 연구 특유의 주관성, 일반화 문제, 그리고 성급한 훈련 프로그램 개발로 인하여 비판도 많이 받고 있는[14] 미완의 이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