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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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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74회 작성일 23-05-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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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6년 8월 14일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대형 룸살롱인 서진회관[1]에서 일어난 집단 살인 사건. 목포 출신 조직폭력배들의 사소한 시비가 희대의 패싸움 집단 살인 사건으로 커져서 반대파 조직원 4명이 살해되었고, 주범 2명은 사형당했다.
  • 서울목포파(가해자): 정요섭(두목, 당시 41세)[2], 장진석(부두목, 당시 26세)[3], 김동술(행동대장, 당시 23세, 사형), 김승길(당시 27세), 유원희, 박영진(당시 28세), 고금석(당시 22세, 사형), 양회룡, 강정휴, 홍성규, 김경만
  • 맘보파(피해자): 오재홍[4], 천종갑, 고용수(사망), 조원섭(사망), 송재익(사망), 장경식(사망), 이왕규, 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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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된 조원섭, 고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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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익, 장경식

2. 사건 개요[편집]

2.1. 발단[편집]

1986년 8월 14일 오후 10시 30분, 서울 강남에 있는 대형 룸살롱 서진회관 17호실에서 목포 출신 조직폭력배인 맘보파 조직원 7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서진회관은 현재의 봉은사로 신논현 마에스트로 오피스텔 자리로, 지금의 9호선 신논현역과 언주역 사이 딱 중간에 위치했다.[5]

그 술자리는 교통사고를 낸 뒤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맘보파 조직원 고용수(당시 28세)[6]의 석방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그 옆방인 16호실에서는 유도대학(현 용인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스스로를 서울 목포파로 부르던 8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창 흥을 돋우며 조직원의 출소를 축하하던 맘보파 일행 사이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방이 너무 좁다며 맘보파 일행들이 종업원을 불러 "야, 다른 방으로 바꿔줘!"라고 요구하자, 종업원이 "오늘은 빈 방이 없습니다."며 거부했다. 다음 날이 광복절 휴일이라서 룸살롱의 모든 방이 손님들로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거부당한 맘보파 일행들 중에서 한 명이 남자 종업원의 태도가 기분 나쁘다며 마구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다른 조직원들이 말린 후 종업원을 밖으로 내보냈는데, 구타당한 채 울면서 방 밖으로 나오던 종업원을 화장실에 다녀오던 서울 목포파 조직원이 발견하고 이유를 따져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평소 자신들을 무시하던 맘보파 일행이 자기네 구역에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밀고 들어와 맘 놓고 술을 마시는 것도 마땅찮은데, 동생 같은 종업원을 구타하기까지 하자 분노했다. 하지만 분명히 자신들보다 실전 경험도 많고 센 상대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주저했다.

2.2. 범행[편집]

갑론을박과 계획, 작전을 거듭한 끝에 종업원들을 통해 맘보파가 무기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에 만취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과 야구방망이를 꺼내들었다. 비록 오랫동안 무술 훈련을 받아온 대한유도대학 선후배들이었지만,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나이 어린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손에 무기를 들었으면서도 강적인 맘보파 조직원들이 무서웠다. 특히 맘보파의 행동대장 조원섭은 전설의 칼잡이로써 다른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공포의 대상이었다.

마음을 다 잡고 무기를 손에 든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17호 방의 문을 열어젖히고 괴성을 지르며 난입해 들어갔다. 닥치는 대로 칼과 방망이를 휘둘렀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이 가장 두려워 한 조원섭에게부터 가장 먼저 집중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김동술은 생선회칼로 송재익과 고용수의 이마, 가슴 등 온몸을 찔렀고, 고금석은 줄칼로 조원섭, 장경식 등 2명을 찔러 즉사시켰다. 이렇게 맘보파 조직원 7명 중 4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나머지는 중상을 입었다. 광복절 특사로 출소해 축하받던 고용수 역시 처참하게 피살당하면서 축젯날이 한순간에 제삿날이 되고 말았다. 조직원들 중 핵심이 4명이나 사라진 맘보파는 그렇게 처참하게 참패했다. 이후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4명의 시신을 차에 싣고 20분 거리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한 정형외과 수술실 앞에 내려놓고는 “교통사고 환자요!”라고 소리치고 도망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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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요섭, 고금석, 강정휴, 박영진. 이중 강정휴는 수사에 혼선을 빚기 위해 위장 자수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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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승길, 유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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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홍성규.

범행 직후 도주했던 조직원들은 사건의 파장이 예상보다 커지고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하나 둘 경찰에 자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 사건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관계도 없는 주변 인물들을 위장 자수하게 하는 등(홍성규는 8월 16일, 김승길은 이틀 뒤인 18일에 자수했고, 엿새 후인 24일에 유원희가 청량리1동에서 검거됐다.) 수사에 혼선을 빚기 위한 꼼수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 사이에 주범인 장진석과 김동술은 전북 임실군에 있는 한 저수지 안 외딴섬에 숨어들어가 낚시꾼으로 위장한 채 은둔해 있었다.

판결문[7]에서는 위의 범행과정과는 차이가 있다. 시비가 붙어 양측이 홀에서 대치한 상태에서 고금석이 먼저 조원섭을 찔렀고 조원섭과 송재익은 화장실로 피했고 고용수와 장경식은 17호 방으로 피신하였다. 김동술과 고금석이 주동이 되어 먼저 화장실에서 조원섭과 송재익을 칼과 방망이로 살해했으며 그다음 17호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고용수와 장경식을 역시 살해하였다. 피해조직원 나머지는 부상당한 건 아니고 1명(이왕규)은 카운터에 있다가 도망갔고 1명(차권)은 악사대기실에 숨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았고 1명(오재홍)은 일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서 화를 면했다.관련기사 또한 전북 임실에 있는 한 저수지 안 외딴섬에 숨어들어가 낚시꾼으로 위장한 채 은둔한 사람은 김동술과 부두목격인 장진석이며 고금석은 그전에 자수하였다. 관련기사 

2.3. 수사[편집]

경찰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서진 룸살롱 사건’의 정확한 실체와 연루자들을 모두 밝혀내기 위해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위장 자수한 자들을 솎아내고, 가담자들의 실체를 파악한 경찰은 달아난 주범 장진석과 김동술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망을 총동원했다. 결국 두 수배자의 위치를 알아낸 경찰은 5명의 무술 고단자 형사를 현장에 급파했다.

‘독 안의 쥐’가 된 장진석과 김동술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형사들의 접근을 눈치챈 두 사람은 칼과 낚시 도구 등 흉기들을 들고 끝까지 저항했다. 그러나 결국 노련한 형사들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검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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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진석, 김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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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두번째부터 고금석, 박영진, 김동술, 장진석, 정요섭, 김승길, 유원희, 강정휴, 나석호.

이 때 서울로 압송되어 온 장진석과 김동술은 TV 카메라 앞에서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전혀 반성하지 않고 뻔뻔한 모습을 보여 충격을 주었다.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뉴스에 나오는 조폭들은 늘 증거품 흉기가 널린 책상 뒤에서 고개 푹 숙인 머리 짧은 덩치들이 전형적인 모습이었는데, 예전과 다르게 뻣뻣을 넘어 뻔뻔한 모습이 방송되자 전국적으로 충격을 준 것.

그러나 이들의 허세는 오래 가지 못해서 재판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엉엉 울면서 죽을 죄를 졌다고 하소연하는 등 처량한 모습으로 돌변했다고 한다. 체포된 지 보름이 지나고 현장검증을 하는 데 180도 다른 모습으로 내내 고개 숙인 모습으로 방송에 나왔다. 당시는 군사정권 아래 경찰의 권력과 폭력성이 가장 강했던 때인데다가 잘못 다뤘다간 파장이 커질 수 있는 운동권 학생도 아닌 조직 폭력배, 그것도 전국민들이 나쁜 의미로 주목하고 있는 이들을 경찰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심문했을 것은 당연지사. 조폭의 환상에 빠져 객기를 부리다가,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

이 사건으로 총 12명의 두 폭력조직 조직원들이 구속되었고, 1986년 12월 26일 1심에서 고금석과 장진석, 김동술, 김승길에게 사형, 박영진에게 무기징역이 내려졌다. 1987년 5월 2일 항소심에서는 사형수들 중 김승길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사형을 면했고[8], 박영진은 무기에서 다시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상고를 거쳐 1987년 10월 13일 대법원에서 장진석도 무기로 감형되었다[9]. 결국 주범인 김동술과 고금석은 사형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두 사형수는 범행이 너무나 잔혹했던지라 같은 재소자들에게도 두려움을 사서 기피당해 외롭게 지냈다고 한다.

김동술과 고금석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1989년 8월 4일, 처형 되었다. 김동술은 체포된 뒤 천주교에 귀의하여 신앙생활을 했는데, 체구가 크고 완력이 센지라 극한 상황에서 반항하지 않을까 직원들이 우려하기도 했으나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평소에 매일 아침 시키던 운동을 그날은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 집행 때는 아침 운동이 없음을 알고 집행을 예견하여 머리를 깨끗이 감고 양치질을 오래 했다고 한다. 그는 그날 집행된 첫 사형수로 오전 9시에 사형장으로 들어왔다. 그가 최후의 말을 남길 때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부모님께 죄송합니다. 생각해 볼수록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2년 남짓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도움을 준 여러 형제자매들에게 감사합니다. 자매들에게 안부 전해주십시오.
진석이 형은 무기로 감형되었으니 다행입니다.
나는 죄를 짓고 가지만 이 땅에 사형 제도가 없기를 바랍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교화위원 문장식 목사는 '폭력 세계의 의리를 끊지 못하고 어떻게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고 이후 말했다(...)

그런데 유언과 추영호 신부의 종교의식이 끝난 후 김동술을 집행할 때에 문제가 생겼다. 형구가 고장나 말을 안 들었던 것이다. 버튼을 눌렀는데도 바닥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전에 점검도 안했나 의아하겠지만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한 후 첫번째 사형집행 대상이 김동술 이었고, 이때 새로 만든 교수대를 처음으로 작동시키게 되었는데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집행 전에 형구 작동 연습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하는데도 사고가 났다.#. 결국 옆에 김동술을 내버려둔 채 교수대를 수리 했다고 한다. 45분 동안 집행이 지연되었으며, 김동술은 그 시간 내내 "주여, 이 몸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큰소리로 기도하는 등 덜덜 떨며 누워 있다가 재집행을 받고 죽었다.

징역 20년을 선고 받은 박영진은 2006년 출소 후 2010년 52세의 나이로 장진석의 누나와 결혼했고, 장진석은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수감 생활을 하다가 2017년 12월 22일 특별사면되어 순천교도소에서 31년 만에 57세의 나이로 출소하였다.

3. 여파[편집]

사건이 발생한 서진회관은 대학생 중심으로 이뤄진 서울 목포파에서 보호하고 관리하던 업소였다. 김태촌의 범서방파 방계 조직으로 강남3구 일대에서 세력을 과시하고 있던 맘보파 일행은 서울 목포파를 무시하고 서진회관을 축하 파티 장소로 정했던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 수사 과정에서 일부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당시 무장한 상태에서 맘보파의 옆방에 있었던 것은 상대방이 방심한 틈을 타 기습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진술했다. 오재홍은 김태촌의 부하 중 한 사람으로서 별명이 맘보로 그가 따로 관리한 조직이었다.

이 사건의 나비효과로 이 사건 석달전에 발생한 김태촌과 고위현직검사가 연루된 뉴 송도 호텔 나이트 클럽 사건으로 불똥이 튀어버렸고 김태촌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관련기사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유도대학은 조폭 양성소라는 비난을 들었으며 교명을 대한체육과학대학으로 개명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1992년에 용인대학교로 재개명.

이 사건의 피해자인 조원섭은 서울과 목포에 이름난 싸움꾼[10]으로 허영만의 만화 비트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싸움 실력이 뛰어나도 회칼, 대검, 야구방망이,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채 다수가 덤벼들면 힘 한번 제대로 못 쓰고 당할 수 밖에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싸움 장면은 쇼이고 허구일 뿐이다. 더구나 사람은 전력으로 5분 이상을 싸울 수가 없다권투 시합도 3분 뛰고 쉬면서 해도 막판에는 다들 기진맥진 한다.

이 사건의 가해자들을 보면 사건 당시를 기준으로 두목인 정요섭만 41살이었고 나머지 조직원들은 죄다 20대 초중반으로 나이가 많아봤자 27살이었고 사형당한 2명 중 고금석은 22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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