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같지 않은 내 몸, 뚜렛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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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941회 작성일 22-09-01 15:35본문
초등학교 시절 눈싸움이 철없는 코흘리개들의 관심사가 된 적이 있었다. 눈싸움의 규칙은 간단했다. 친구끼리 서로 마주보다가 먼저 눈을 감는 쪽이 지는 것이었다. 나름 참을성이 필요한 이 놀이에 나와 친구들은 자주 특정 친구에게 한 판 붙어보자고 했다. 습관적으로 눈을 깜빡이던 그 친구와의 눈싸움은 백전백승으로 끝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마음대로 눈 깜빡임을 조절하지 못 하는 ‘뚜렛 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뚜렛 장애의 역사는 오래 됐지만 정식으로 의학적 기술이 이뤄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1885년 프랑스의 젊은 신경과 의사 조르주 질 드라 뚜렛은 9명의 환자들에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증상을 토대로 새로운 질병을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들은 얼굴, 목, 어깨, 몸통 등 신체 일부분을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훗날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을 그의 이름을 따서 뚜렛 장애로 부르게 됐다.
최근의 기준에 따르면 뚜렛 장애는 여러 가지 근육 틱과 한 가지 이상의 음성 틱이 1년 이상 지속될 때 진단 가능한 틱장애의 일종이다. 그런데 ‘틱(tic)’이란 무엇일까? 틱은 근육의 불수의적(不隨意的) 움직임으로 정의되는데, 쉽게 말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체의 일부분을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뚜렛 장애 환자는 ‘내 맘 같지 않은 내 몸’으로 힘들어 하는 것이다.
단순한 형태의 틱은 눈 깜빡이기, 얼굴 찡그리기, 고개 비틀기, 어깨 으쓱하기와 같은 근육 틱이나 코 킁킁대기, 헛기침하기, 침 뱉는 소리내기와 같은 음성 틱으로 나뉜다. 최근 방송 중인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탤런트 이광수가 맡고 있는 등장인물 ‘박수광’ 을 떠올려보면 쉽게 그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런 형태로 틱이 나타나면 불편하긴 해도 일상생활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틱이 복합 형태로 나타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근육 틱은 자신을 때리기,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만지기, 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기, 성기 부위를 만지는 것과 같은 외설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음성 틱 역시 같은 말 반복하기, 다른 사람의 말 따라하기, 욕설 내뱉기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상상해보라. 의사가 회진을 돌다가 병원 복도에서 폴짝폴짝 뛰어 오르는 광경을. 애인과 입 맞추고 있을 때 갑자기 애인의 입에서 "제기랄"이란 단어가 나오는 상황을.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는 뚜렛 장애의 원인은 무엇일까? 20세기 초반 한때 뚜렛의 동료였던 프로이드에 의해 정신 분석, 정신 치료가 정신 의학의 주된 흐름이 되면서 20세기 중반까지 뚜렛 장애의 원인은 심리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면 해결되지 않는 심리적 갈등이나 성적 충동이 신체로 표현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1960년대 할로페리돌이란 약물이 틱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원인을 찾는 흐름은 생물학적인 영역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현재는 뇌의 피질-기저핵-시상피질 회로(CSTC)의 이상이 뚜렛 장애의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회로의 운동 경로가 과도하게 활성화한 반면 조절 영역은 활동이 감소했기에 틱이 통제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된다.
또한 틱이 전조 충동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전조 충동이란 뚜렛 장애 환자가 틱을 하기 전에 느끼는 불편감을 뜻하는 것으로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나 조이는 느낌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즉 뚜렛 장애 환자가 틱을 하면 불편감이 사라지고 후련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틱을 하게 되는 것이다. 틱을 할 때 뇌의 감정 중추가 활성화하는 것은 심리적 불편감 혹은 안도를 시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뚜렛 장애 환자는 틱을 하기 전에 전조 충동을 느끼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틱을 억제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은 주변 사람들의 틱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뚜렛 장애 환자가 참을 수 있는데도 굳이 참지 않고 틱을 하는 것으로 여겨 무조건 틱을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그치면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아 틱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펴 본 측면만 따져보면 틱은 명백하게 단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틱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 신경정신과 올리버 색스 교수는 그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충동성과 불규칙한 틱을 이용해 드럼을 탁월하게 연주하던 ‘레이’를 소개한 바 있다. 뚜렛 장애 운동선수도 제법 있다. 올해 여름 브라질 월드컵에서 놀라운 선방으로 미국의 골문을 지킨 ‘팀 하워드’ 역시 자신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뚜렛 장애에서 찾았다.
물론 아직까지 뚜렛 장애 환자가 일반인보다 운동 능력이 뛰어난 지 여부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적어도 일부 과제에 있어서는 뚜렛 장애 환자가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각을 이용한 문제 풀기, 문법에서 오류 찾기, 시간을 인식하고 조절하기처럼 인지 기능을 요하는 과제가 바로 그 예이다. 이는 틱이 어느 정도 억제가 가능한 만큼 증상이 심할수록 틱을 더 많이 줄이려 노력한 결과, 움직임을 통제하는 인지 기능과 연관된 뇌 영역이 발달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무리 질환의 장점을 언급해도 건강한 것에는 미치지 못 한다. 특히 뚜렛 장애는 어린 나이에 시작되고 집중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강박 장애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환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이 매우 크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대부분 증상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또한 약물 치료, 정신 치료, 인지행동 치료로도 증상의 많은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뚜렛 장애에 대한 사회의 오해와 편견이다. 특히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인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뚜렛 장애는 자칫 환자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틱도 엄연히 증상인 만큼 뚜렛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사려 깊게 환자를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어릴 적 알았더라면 마음 고생하던 그 친구에게 눈싸움을 제안하는 대신 손 한 번 꼭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