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불임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994회 작성일 22-09-06 10:39본문
제 불임화(强制不妊化, compulsory sterilization)은 강제적인 정관이나 난관의 절제수술 등에 의해 생식 능력을 없애는 수술로, 우생학적인 목적, 인구 제한을 위한 목적으로 한다. 19세기의 우생학이나 민족위생학의 발전으로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법제화되었다. 현재 많은 나라에서 본인이나 배우자의 동의 없이 불임을 강제하는 것은 금지됐다. 강제 불임화와 관련된 법은 단종법(斷種法)으로 부른다.
우생학 민족위생학[편집]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단종은 우생학에 의해 세계적으로 행하였으며, 1892년에는 스위스에서 민족위생학의 관점에서 정신장애 여성에게 단종수술이, 1897년에는 독일에서 유전병 여성의 단종수술(난관절제)이 행하여졌다.[1] 1920년에는 형법학자 카를 빈딩과 정신과의 알프레트 보헤가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근절의 허용"을 발의해 불치의 자가 죽음으로의 의사를 표명한 경우나 빈사의 중상을 입은 의식이 없는 환자는 안락사가 인정되어야 하고 의사표명을 할 수 없는 "불치의 치매자"에 대해서는 "그들의 생명 자체가 무목적으로 가족에게도 사회에게도 무겁기 때문에" 가족이나 후견인이 신청하는 의사와 법률가로부터 인정된다면 살해를 가능케 했다. 1923년에는 유전학자 에르빈 바우어, 오이겐 피셔, 프리츠 렌츠(Fritz Lenz) 공저 "인류유전학과 민족위생학 개설"에서 열등한 유전자의 배제가 민족위생에 있어 최선이라며 렌츠는 장애인의 "번식"은 안락사보다 단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며 히틀러나 나치에 영향을 주고 "나치 우생학의 바이블"로 불렸다. 렌츠는 1931년 "인종위생학에 대한 국민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나치는 인종위생학을 그 강령의 핵심 요구로 대표하는 최초의 정당"이라고 칭찬했다.[2][1]
나라별 강제 불임화[편집]
미국[편집]
강제 불임화의 합법화는 미국이 최초였으며, 1907년 이후 각 주에서 단종법이 제정되었다.[1]
독일[편집]
세계공황에 의한 독일의 경제악화 결과, 복지삭감을 배경으로 1932년 프로이센 단종법이 제출되었지만, 히틀러 내각 성립이후 폐기되었다. 이후 유전병 자손 예방법(Gesetz zur Verhütung erbkranken Nachwuchses)으로 성립되어 강제 불임화가 시행되었다.[1]
단종 대상자는 유전병자와 중증의 알코올 중독자였다.[1] 유전병이란 아래와 같다.
한국[편집]
일제 강점기[편집]
한국에서의 강제 불임화는 일제 강점기에 관련 사례가 있다.
1935년 여수에서 한센인에 대한 단종이 시작되었으며, 이것은 한국 국내에서 한센인을 대상으로 한 강제 불임화의 시작이었다. 1936년 소록도의 소록도갱생원에서는 부부동거의 조건으로 단종수술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거부할 경우 폭행과 협박, 감금이 뒤따랐으며, 소록도 이외의 각 지역의 한센인 요양소 및 정착촌도 비슷했다.[3]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이루어진 강제 불임화는 법률적 근거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되고, 한반도의 분단이 시작된 1945년 이후에도 이루어졌다.
대한민국[편집]
장애인 대상 강제 불임화[편집]
대한민국에서는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면서, 강제 불임화의 근거 규정이 제정되었다. 의사는 유전 또는 전염방지를 위해 불임수술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보건사회부에 불임수술 대상자 발견을 보고해야 하며, 이 결과로 보건사회부의 명령이 있어야 강제 불임수술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해당 규정의 내용이었다.[4] 당시 불임수술의 대상자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허용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과 동일하였으며, 아래와 같다.[5]
- 유전성 정신분열증
- 유전성 조울증
- 유전성 간질증
- 유전성 정신박약
- 유전성 운동신경원 질환
- 혈우병
- 현저한 유전성 범죄경향이 있는 정신장애
- 기타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게 미치는 발생빈도가 10% 이상의 위험성이 있는 질환
이를 근거로 충청남도의 장애인 시설인 충남정심원은 1974년 12월, 12명의 여성 원생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건의했으며, 여기에서 해당 원생이 불임수술 대상자로 보고되어 논란이 되었다.[6]
1975년 4월 한국원자력연구소 측이 충남정심원의 해당 원생들의 피를 뽑아 유전성 여부를 조사했다. 검사결과 9명의 원생들은 자녀에게 유전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같은해 7월에 가족계획 심의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되어 불임수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에 대해 1999년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관련 서류가 폐기되어 확인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7][8]
이 규정에 의한 강제 불임화 규정은 1999년 2월 8일 폐지[9]되었으며, 당시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에 의해 1983년부터 1998년까지 장애인 수용시설에 수용된 장애인에게 강제 불임수술이 이루어졌다는 의혹으로 정신지체장애인 시설을 조사한 결과 전국 60개 정신지체장애인 시설 중 8개 시설에서 남자 48명, 여자 27명(총 75명)의 정신지체장애인이 1983년부터 1998년까지 불임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장애인 불법.강제 불임수술 실태와 대책에 관한 조사보고서'[10]를 통해 공개하였다. 이러한 강제 불임수술 과정에서는 관련 행정기관, 보건소, 대한가족계획협회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법으로 불임수술을 금지하고 있는 미혼상태에서 불임수술을 받은 장애인은 70명으로 장애인 시설에서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이들끼리 결혼을 시키기도 하였다고 밝혔다.[11]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 당시의 충남정심원의 여성 원생 12명에 대한 강제 불임화를 보건복지부는 불허했으며, 보건복지부 측은 강제 불임화 근거 조항에 따른 강제 불임화는 한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남정심원은 1985년, 1987년, 1990년 3차례에 걸쳐 정신지체 장애인 57명에 대해 집단으로 강제 불임수술을 시행했으며, 이를 불법적으로 시행했다고 한다.[10] 당시 각 보건소에서는 가족계획 사업과 관련된 실적쌓기에 따른 불임수술의 목표량이 할당되었으며, 실적 우수자에게는 표창, 해외여행 등의 포상이 이뤄졌는데, 이에 의해 보건소에서 집단 수술이 가능한 사회복지시설을 주로 찾아가 강제 불임수술을 했다는 당시의 보건소 공무원의 주장이 있다. 강제 불임수술을 받은 당사자는 원생 100여명 중 3~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술을 받았으며, 이 중에서는 17살 남자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증언하였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