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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828회 작성일 22-09-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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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나 실언은 정신분석학에서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주제입니다. 실수는 우연히 벌어진 일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를 완전히 무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곤란한 상황이 종종 벌어집니다. 프로이트는 실수 속에 무의식적인 충동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여성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데이트에 번번이 지각한다면, 상대방은 당연히 여성의 본심을 의심할 것입니다. 여성은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각은 전적으로 우연한 실수라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여성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정신치료를 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종종 벌어집니다. 걸핏하면 회사에 지각하고 상사와 싸우던 환자가 사회적응곤란 문제로 내원했습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정신치료를 하기로 계약을 맺고, 치료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고치기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면서 점차 치료에 지각하는 일이 많아지고 의사와 사소한 일로 싸우려드는 등 직장상사와의 관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진료실 안에서도 재현되었습니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이는 사실 매우 흔한 일입니다.

의식적으로는 치료를 받고 자신의 패턴을 개선하고 싶어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권위적 대상에 대해 저항하며 자신이 바뀌는 것을 거부하려는 충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무의식은 때로 우리 자신을 배신하기도 하고 우리 자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면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실수를 가지고 무의식 운운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해석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죠. 정신분석에서는 어떤 실수라도 그 의미는 당사자의 자유연상에 의해서만 확인될 수 있는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그저 추측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주변사람들의 말과 행동 속에 숨겨진 의미를 너무 분석하려들 필요는 없습니다.

앞 사례의 주인공은 상대방의 실언을 통해 그의 진심, 즉 무의식까지 살피려고 애쓰고 있는데요. 무의식이라는 것은 당사자도 모르는 내면 깊은 곳에 간직된 은밀한 충동이며, 한두 가지 생각으로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서로 상충되는 충동들은 뒤엉켜 있게 마련입니다. 무의식적 부분을 짐작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리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소한 실언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무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의식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의식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한마디의 실언으로 상대방의 무의식을 짐작하려 애쓰는 것보다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된 존재로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타인의 숨겨진 의도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쓰다 보면 불안해지고, 의심이 들며, 피해의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개개인의 성격 특성이나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이런 심리상태가 나타나는 것인데요. 이런 의심과 피해의식은 투사라는 방어기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신세계에서 위험한 충동이 일어나면, 신호불안이라는 빨간 신호등이 켜집니다. 자아는 이런 위험한 상태를 조절하기 위해 무의식에 존재하는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상황을 제어하려 듭니다. 방어기제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그 성숙된 정도도 다양합니다. 투사는 방어기제 중의 하나로서, 자신의 감당하기 어려운 욕구와 소망을 다른 사람이나 바깥세계로 전가시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입니다. 여러 방어기제들 중에서도 투사는 특히 미숙하고 병적이며, 심할 경우 조현병(정신분열병)이나 망상장애 같은 정신질환으로 나타납니다.

망상의 형태로 나타나는 투사는 의부증, 의처증, 피해망상 등이 있습니다. 한 예로 자신의 폭력적 충동을 외부세계로 투사해 세상이 자신을 공격하고 박해한다는 피해망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 가운데, 자신이 도청당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집안에서 은거하면서 방 창문에 커튼을 겹겹이 치고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며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국가기밀을 알고 있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감시당하고 있다고 가족에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피해망상도 자신의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을 외부세계에 투사한 결과로 얻어진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간헐적으로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아이는 자주 이런 방어기제를 사용해 자신의 잘못을 다른 존재에게 떠넘기는데요. 이것은 의식적인 거짓말이나 회피라기보다 무의식적인 투사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성인들도 간혹 이런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전쟁이나 사회적인 혼란, 위기가 닥쳤을 때 모든 부정적인 측면을 적군이나 타민족에게 투사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유지하려드는 것이죠. 내면에 무의식적 동성애 충동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충동을 외부로 투사하며 동성애를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근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나 집단괴롭힘의 경우에도 자신들의 나약함, 취약성, 부정적 충동 등을 특정 대상에게 투사해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은 합리적이고 건강한 태도입니다. 그렇지만 자칫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의도를 의심한다면, 나의 심리상태만 불안정해질 뿐입니다. 또한 의심과 피해의식을 보인다는 것은 투사라는 미숙하고 병적인 방어기제를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불안과 의심이 고조될 때는 나의 성격 특성과 전반적인 심리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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