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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에서 만난 사람들 (자살 유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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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763회 작성일 22-09-2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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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자살자 유가족을 ‘생존자’라고 부른다. 마치 가족 중 하나가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은 것 마냥, 마치 언제라도 또 그렇게 자살을 시도할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결코 좋은 소린 아니지만 그렇게 부르는 것도 일견 납득이 간다. 자살 유가족들은 먼저 간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할 확률이 매우 높다니 말이다. 가족을 자살로 잃은 경험은 그만큼 고통스럽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은 것보다 이 세상에 더 나쁜 일은 없다.

하루하루 버텨내던 어둠의 시간들

하물며, 외아들을 자살로 잃은 부모는 어떻겠는가? 남은 나머지 생을 어찌 살아야 할 지, 아니 당장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 지, 심지어 지금 살아있기나 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고통스럽고 버거운 시간 속에 던져지기 마련이다.

내 아들은 2년 6개월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들은 대학졸업을 1년 앞두고 있었고, 군대도 만기제대했다. 부모로서 다 키웠다고 생각했던 시점이었다. 그 때, 청천벽력이 떨어진 것이다. 죽은 아이를 붙잡고 통곡을 해도, 죽어라 하늘에게 빌고 빌어도, 그 애원을 욕설과 원망과 저주로 바꿔 다시 하늘에 퍼부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충격으로 각막이 파손되어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리게 된 눈과, 갑자기 잘 들리지 않게 된 귀 등 후유증만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차라리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때는 나았다. 진짜 문제는 장례를 치르고 난 후부터였다. 아들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주관한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다. 아들을 연기로 날려 버리고 난 후, 약 100일 가량을 나는 폭음으로 지샜다. 끊었던 담배도 하루에 3~6갑 피워댔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어찌어찌 버티며 지낸 것이다. 이런 삶이 끔찍해서 아들을 따라 죽으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다가도, 고향에 계신 어머님과 나보다 더 고통스러울 아내를 생각하며 견뎌냈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게 해준 사람들

그렇게 어찌 시간을 흘려 보내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분명 나 같이 가족을 자살로 잃은 사람이 또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견뎌내는 것일까?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 운영하는 ‘자작나무(자살유족의 작은 희망 나눔으로 무르익다)’라는 곳을 찾았다. 자살유족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자살자 유가족들이 모여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연구도 하고, 강의도 듣고, 서로 경험을 나누는 곳이라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곳을 찾았다.

첫 상담 때 나를 맞이한 것은 꼭 아들 또래의 젊은 상담 선생님이었다. 그 앞에서 아들 이야기를 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니 좀 시원해진 것도 같았다.

그리고나서 한 달에 한 번 있다는 유가족들 모임에도 나가보았다. 나보다 앞서서 가족의 자살을 경험한 이들이 아픔을 이겨내며 가끔씩 웃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나는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다. 100일이 지나면서 술을 끊기 위해 일부러 대리운전 일도 3개월간 해보고, 아내와 같이 교회에 나가 울면서 예배를 드리거나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천국에 있을 아들을 대신해서 아들의 블로그에 매일 일기를 쓰며 위안을 삼아보려 하기도 했다. 가슴이 송곳으로 찔리듯 늘 아프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도 한 달에 한번 있는 자작나무 모임에는 꾸준하게 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고정 멤버가 되어 있었다. 또한 나도 모르게 나보다 늦게 사고를 당한 유족들을 위로하고 어쭙잖은 조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남을 위로할 처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위로하는 일임을 곧 깨달았다. 내친김에 용기를 내서 협회에 나가 심리상담사 공부를 하며 자격증을 땄다. 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은 살고, 사랑할 수 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즈음, 우연히 한국의 자살자 수가 다른 선진국 평균에 두 배에 달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당시 뉴스에서는 아들이 떠났던 2010년 통계를 보여주었다. 그 해에만 1만 5800명이 자살을 했고, 이것은 약 34분에 한 명 꼴로 자살자가 생긴다는 소리라고 했다.

자작나무 모임에 한층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자작나무 같은 모임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살이 얼마나 큰 비극이고 아픔인지 알고 있는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면 조금이라도 자살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비공식 모임도 갖고, 죽음과 슬픔 그리고 종교와 철학에 대해 토론도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이, 그리고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삶과 죽음에 있어서는 제법 철학자 흉내를 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은 언젠가 다 죽는다는 것, 그러나 다만 순서가 뒤바뀔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죽음 뒤에 더 큰 세상에서 헤어진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또, 나 역시 매 순간 죽어가고 있으며, 언제 죽어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또 얼마나 어려운 경지인지도 알게 되었다. 아들이 떠난 후 2년 동안 내가 깨달은 것들이다.

아들의 뜻밖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도 열심히 돈을 벌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여느 중년의 누군가처럼 평범하게 늙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늙어 죽을 때, 갑작스러운 이별과 준비되지 않은 죽음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나는 늙어가고 있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들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와 아프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죽음의 두려움이나 준비 안된 죽음의 트라우마를 누구나 겪는 감기 같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죽음 역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깨달은 가장 크고 중요한 사실은, 죽고 사는 일이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고, 천길 만길 낭떠러지 밑에서도 사람은 살며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의 자살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작나무 같은 유가족 모임을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나는 자작나무에서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로 상처를 어루만지며 아픔을 이겨냈다. 홀로 견디기에는 너무나 큰 아픔인 만큼,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면 조금은 견디기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혹시 지금 이 순간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이 떠난 후 나처럼 아프고 괴로워할 당신의 가족을 생각해서 한번만 더 굳세게 마음을 먹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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