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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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96회 작성일 22-09-30 13:38본문
정신분석에서 동일시란 다른 사람을 닮아가는 과정으로 방어 기제의 일종으로, 외부의 것을 안으로 가져오는 내사(introjection)나 내재화(internalization)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에 상응하는 개념은 투사(projection)와 외재화(externalization)다. 동일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심리성적 발달 참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동성 부모를 대상으로 일어난다. 동성 부모와의 동일시를 통해 아이는 구조 모형(무의식 참조) 중 하나인 초자아를 형성한다.
초자아는 규범과 양심, 자아 이상을 의미한다. 실제로 아이들은 부모의 규범을 내재화하며, 부모의 평소 지시와 규칙에 따라 양심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동성 부모를 통해 자신의 미래상을 확립한다. 실제로 많은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직업을 자신의 장래희망으로 꼽는다. 이렇게 부모처럼 가까운 사람의 말투와 행동, 심지어 가치관까지 모방하는 현상을 반두라는 관찰 학습(근접성 vs. 수반성 참조)이라고 했다. 이런면에서 모방과 동일시는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관찰 학습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을 동일시로 설명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다.
1973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무장 강도에게 6일 동안 볼모로 잡혀 있던 은행 직원들이 무장 강도에게 동화되었다. 처음에는 이들도 강도를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껴서 풀려난 후에도 경찰에게 이들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FBI의 자료에 따르면 포로나 인질들의 27%가 이러한 증후군을 보인다고 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프로이트의 지적 후계자이자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개념화한 공격자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the aggressor)로 설명이 가능하다. 안나는 동일시가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포로수용소에 있던 일부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나치 친위대 소속 병사들과 동일시했다. 공격자와의 동일시는 비단 나치에게 협조하고 자신의 동료들을 감시하던 배신자들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포로였던 사람들 중 일부에게도 나타났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생명이 위협받는 불안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신도 그러한 권한을 가진 것처럼 느끼려는 무의식적인 소망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 동성 부모와 동일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공격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해치지 않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라고 하지만, 공격자와의 동일시 현상은 인질이나 포로에서 풀려나기 전부터 발생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