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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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822회 작성일 22-10-05 15:31본문
밀양 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강간 사건은 밀양 남고생 무려44명이 중고생 여러 명을 집단 강간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2004년 1월 중반부터 2004년 11월 말까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 등지에서 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밀성고등학교, 밀양세종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당시 만 18세, 1986년생)이던 밀양시, 창원시 지역 거주 남학생들과 창원의 모 직업전문학교 학생(당시 만 18세, 1986년생) 등 115명에 의해 울산광역시 중구의 모 여중에 다니는 최모 양 자매(당시 14, 13, 울산시 중구)와 그들의 고종사촌인 창원시에 사는 노모 양(당시 16, 창원시 중앙동), 그외 창원시에 거주하는 모 여중생, 여고생 2명 등을 밀양으로 유인, 밀양시내 가곡동의 모 여인숙 등지에서 집단 성폭행, 구타, 공갈협박, 금품갈취해온 강도, 강간, 폭력 사건이다. 이들은 지역 일진으로 부르는 학생들로 일명 밀양연합이라는 유사 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모두 1986년생이다.
2003년 7월 초반부터 2004년 1월 초반까지 채팅으로 만났던 울산시 중구의 최모양(당시 울산 모 여중 3년)을 2004년 1월 중반에 불러낸 뒤 박모(당시 만 17세, 밀양 삼동면, 1986년생), 김모(당시 만 17세, 창원시, 1986년생) 등의 고등학생들은 이후 2004년 11월 말까지 집단 윤간하였으며, 최 양의 여동생과 창원시에 사는 고종사촌 노모 양을 불러내 구타하고 금품을 갈취하기까지 하였다.[1] 그러나 일부 가해자 및 가해자들의 여자친구 중 수 명이 피해자들이 당하는 장면을 핸드폰과 캠코더 등으로 촬영, 부모에게 발설할 경우 전 세계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결국 자매들은 1년 가까이 부모에게 말도 못했고, 일부 가해자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했다. 그러나 얼굴, 신체가 선명하게 촬영된 동영상들과 사진들, 그리고 실명을 언급함으로써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신상은 모두 인터넷에 유출되었고, 문제의 동영상과 사진들은 일본, 미국, 중국, 유럽 등지에 확산되어, 국제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경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박군 등 폭력서클 조직원 10명은 박군의 자취방에서 최양을 집단 구타하고 성폭행했다고 한다.[2] 이들 고교생들은 최양외에도 또 다른 여고생을 성폭행하는가 하면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해 협박수단으로 이용했다.[2] 또 경찰은 이들이 창원과 밀양 등지에서 여중생 2명을 20여 명이 집단 성폭행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확대[2], 추가로 2명의 피해자를 확인했다. 창원시 거주 여고생 2명이 이들에게 강간당했으나 창원의 여고생들은 신상 노출을 우려하여 수사협조를 거부했다.[3]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했다. 가해자 가족에게서 협박을 받는가 하면 수사를 맡은 경찰관은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놓았다.”고 소녀들에게 논란의 발언을 했다.[4] 또한 일부 가해자들 역시 반성은 대신 경찰서에서 피해자들에게 폭언, 협박을 했고[5], 일부 가해자와 일부 가해자 부모들의 반성없는 태도와 뻔뻔한 태도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신상털이에 나서면서 억울한 사람들의 신상을 털어서 유포하기도 했다.[6]
경찰의 조사를 받고 싶다는 피해자들의 부탁을 거절[5] 하는가 하면, 경찰관들의 배려없는 수사는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유출시켰다. 수사 도중인 12월 8일에는 경찰관들이 근처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면서 피해자들을 비난하다가, 피해자의 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노래방 도우미들의 폭로로 진실이 밝혀 졌다.[7] 5명의 피해자 중 여중생 2명 등은 가해자들로부터 회유, 협박, 폭언, 압력을 당하고 한 피해자는 학교까지 가해자의 어머니가 쫓아와서 괴롭히기도 했다. 그밖에 2명의 피해자(창원시 거주)인 여고생들은 진술을 회피했다. 사건은 피해자 5명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중 울산의 첫 피해자는 자살 시도를 하는 등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또한 공범자 및 연루자가 70여명이 추가로 존재하는 점이 포착[8], 용의자는 115명이었으나 나머지에 대한 조사는 흐지부지됐다. 가해자 및 공범자 110여 명 중 3명에 대해서만 10개월 형이라는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과, 피해자 여중생에 대한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피해자 여중생 가족에 대한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으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피해 여학생 중 1명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가출하였다. 사건 진행 중에는 사건발생지점인 가곡동 근처에서 21세인 백모씨에 의해 여고생이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개요[편집]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지역의 고교 3학년생(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밀성고등학교, 밀양세종고등학교)들과 기타 창원의 창원한백직업전문학교 학생 조모(당시 18세), 김해시의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들의 동창생 남모 등 밀양연합 일진 조직원들이 여중생 자매중 학생을 약 일년 동안 집단 성폭행하고 피해자의 동생과 이종사촌의 금품을 빼앗은 사건이다. 이들은 피해 여학생 최모양 , 기타 창원시 거주 여고생 2명 등을 집단으로 강간하고, 딜도 등 성기구들을 입수하여 고통을 주었다. 또한 카메라, 핸드폰, 캠코더 등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한 뒤, 발설하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였다. 이들 피해자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나 가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여자친구들이 인터넷에 동영상과 사진들을 유포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첫 피해자인 최모 양의 움직임을 이상하게 본 최모 양의 친척들의 권고로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처음 피해자 최양(당 14세, 울산시 중구)를 채팅으로 만난 김모군과 그의 소개로 최양 자매를 소개받게 된 박모 등이 성폭행을 했고, 그 뒤 확인된 것에 의하면 세종고 10여 명, 밀성고 4, 밀양공고 20여 명, 창원한백직업전문학교 1, 김해지역 고교생 1명 등이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이들 가해자 중 전모(당 18세) 등 일부는 타 학생 폭행 혐의, 타 학생 강간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이들도 있었다.
가해자들은 2004년 12월 6일 18:05경부터 창원시 중앙동의 모 PC방과 도서관 등 경상남도 창원시, 밀양시, 울산광역시 내 30여개 장소에서 체포되었고, 12월 7일 다른 가담자와 공범자들도 추가로 체포되었다. 처음 사건에는 41명으로 나타났지만 나중에는 75여 명의 추가 관련자가 드러났다. 모두 다 1986년생으로 나이가 같은 이들 가해자들은 알려진 것과 달리 폭력 조직이나 동아리를 결성해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전문학교와 현장 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연루자 100여 명 중 3명에 대해서만 10개월형이라는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과, 피해자 여중생에 대한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피해자 여중생 가족에 대한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으로 사회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고, 수능 부정 시험과 비슷한 시기에 터진 사건이므로, 고등학생에 대한 윤리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애초 알려진 41명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또 피해를 당한 일부 여중생들이 피의자 가족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해, 경찰이 진상조사에 나서기도 했다.[8] 그러나 대부분 10년 이내의 가벼운 처벌과 훈방조치를 받아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추가 가해자 75명에 대해서는 수사가 더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그밖에 사건 현장 당시 망을 보던 학생 몇인과 가해자들의 여자친구로 범행에 동조, 가담하거나 목격, 혹은 범행을 도왔던 여학생들도 있었다. 이 중 심한 막말과 가해자 옹호, 피해자들에 대한 비난 등으로 물의를 빚은 김모, 윤모, 진모, 진모, 황모 양 등의 실명과 이메일, 블로그, 싸이월드 등의 신상정보가 유출되어 한때 물의를 빚기도 했다.
최모 양 자매와 사촌 노모 양 외에도 창원시에 거주중인 여고생 2명이 추가 피해자로 확인되었으나 이들은 수사협조를 거절했다. 피해자는 여중생 4명에 여고생 3명 등 7명이고 이들은 대부분 밀양시인근 지역인 울산광역시와 창원시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경찰관들이 피해 여중생 최모양 자매에게 막말을 한 것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힘에 의해, 사건을 수사 중인 울산남부경찰서가 피해자 인권보호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경찰서장이 대기 발령되고, 2005년 인권위원회 등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이 진상 조사에 나서게 되었다.
전개[편집]
원인[편집]
2003년 6월 울산시 중구에 거주중이며 모 여중에 재학 중인 최모 양(당시 만 14세, 1989년생)은 여동생이 전화번호를 잘못 눌러 통화하면서 한 밀양의 어느 남자고등학교 3학년 학생 김모 군(당시 만 17세, 1986년생)을 알게 되었다. 김군은 전화를 받은 뒤 "한번 만나자"며 최 양을 밀양으로 유인했다.[9] 이들은 일명 '밀양연합'이라는 학교폭력 서클을 결성해 손과 허벅지 등에 문신을 새기고 집단으로 지역을 배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0]
2004년 1월 중순 밀양시 가곡동에 있는 여인숙에서 처음 윤간을 하였다.[10] 이후 밀양시내 여인숙과 모텔, 학교 운동부 버스안, 놀이터 등지에서 A양을 집단성폭행하고 수시로 금품도 빼앗았다.[11]
2004년 1월 중순 최 양은 채팅을 동생과 함께 하다 가해자 박모군(만 17)과 연락, 밀양시내에 놀러가 만나게 그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밀양시 가곡동에 있는 여관에서 집단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가해학생들은 최양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아빠한테 다 얘기한다!’ 협박하고, 학교에 가야하기에 못 간다고 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이들의 범행은 폭력배 중 한 명인 김모(17)군에게 김양이 전화를 잘못 건 데서 시작됐다. 전화를 받은 김모 군은 인터넷 채팅으로 여중생들과 연락 중 2004년 1월 최양을 유혹해 밀양으로 유인한 후 두목격인 박군에게 소개했고, 피해자를 둔기로 때린 뒤 밀양시 가곡동의 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집단 성폭행하고 성폭행 장면을 촬영한 뒤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였다. 이들은 동영상을 올리겠다며 협박하여 피해자들이 아무 말도 못하게 했지만, 가해자들 중 중 일부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문제가 되었다. 박 모(18)군 등 밀양 지역 3개 고교 학생으로 구성된 폭력배 41명은 올 이들은 최양의 언니까지 유인해 1년간 성기구 등을 이용해 집단 성폭행했고 급기야 피해 여중생은 성폭행 충격으로 자살을 기도하는가 하면 지금까지 산부인과 치료를 받다가 정신과 진료도 받게 됐다.
이들은 밀양연합이라고 하는 유사 조직을 결성하고 있었다. 2004년 12월 13일 경찰은 자체 조사결과 '밀양연합'이라는 서클은 없었으며 이번 사건 연루 학생들은 조직폭력배가 아니라 직업훈련소를 함께 다니면서 서로 알게 된 친한 친구들의 단순 모임이었는데 행동강령이 있는 폭력조직인 것처럼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봤다.[12] 그러나 밀양연합 은 실제로 존재하는 단체였다.
지역사회와 학교 등에서는 밀양연합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러나 2005년 3월 일부 언론이 학생들을 통해 재조사한 결과 밀양연합의 존재는 사실로 드러난다.[13] 밀양연합은 학교를 주름잡는 아이들의 친목단체다. 밀양연합이라고 하면 아무나 못 건드린다. 청도연합이나 창원연합하고 비슷하다. 요즘 웬만한 지역에는 다 연합이 있다[13] 는게 학생들의 진술이었다.
전개 과정[편집]
2004년 1월 중순 밤 밀양시 가곡동 소재 한 여인숙에서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피해자 A양을 윤간하는 등 11월 말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총 11회에 걸쳐 여관과 학교 놀이터, 공원 등지에서 상습적으로 윤간과 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성폭행을 당한 A양은 “죽고 싶다”며 수면제 20알을 먹고 쓰러져 이틀만에 깨어나기도 했으며 수차례에 걸친 집단 성폭행 후유증으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11]
성폭행이 1년여 지속되면서 가해학생들 수는 점점 늘고, 쇠파이프로 구타하거나 옷을 벗긴 채 휴대전화로 촬영하여 공갈 협박을 했다. 이후 최 양에게 언니를 불러내지 않으면 성폭행 사실을 인터넷과 학교 등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 일부 가해자와 가해자의 여자친구들까지 나타나 성폭행 장면을 캠코더와 핸드폰으로 촬영했고 촬영장면에는 얼굴과 신체가 선명하게 나타났고 여기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말하는 등 신원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가해자들 및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은 피해자 자매에게 부모에게 말하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하여 피해자 자매는 아무 말도 못했다. 여기에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을 묻다가 고종사촌인 경남 창원시에 사는 노모 양의 존재를 알게 되어 노모 양까지 불러다가 .
밀양으로 온 A양과 사촌언니인 B양(고1)을 두목 격인 박 군에게 소개했고, 박군 등 12명이 최양 을 밀양시 가곡동의 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마구 때린 뒤 집단 성폭행했다.[9] 박군 등은 또 성폭행 장면을 촬영한 뒤 A양에게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 집단 성폭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9] 이들 피해 여중생은 아무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그러나 가해자와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은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고, 가해자들의 신상은 물론 피해자들의 신상까지 인터넷에 확산되었다.
가해자들과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이 올린 동영상들과 사진들은 인터넷에 확산되고 일본, 중국, 미국 등지로도 확산되었다.
이들 고교생들은 다른 여고생을 성폭행하는가 하면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해 협박수단으로 이용했다.[2] 성기구를 이용해 최대 4~10명까지 집단 성폭행하는 등 엽기적 성범죄도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극도의 불안감과 수치심에 이들이 시키는 대로 여관과 놀이터, 자취방 등으로 끌려다니며 11차례에 걸쳐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며 "박양 등은 수치심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아직 성폭행 후유증에 산부인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2]
최 양 자매와 노 모양은 부모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특히 첫 피해자인 최모 양(14)의 정신적 피해는 심했다. 그러나 이들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는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가해자들은 밀양시내 소재한 밀양세종고등학교, 밀성고등학교, 밀양공업고등학교와 대학을 포기하고 진학한 창원의 모 직업전문학교 재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속칭 지역 '일진'으로 통하는 학생들과 지역 유지의 아들들이었고, 유사조직 밀양연합 조직원 외에 일부는 현장 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만난 사이이기도 했다.
가해학생들은 쇠파이프로 00양을 구타를 하거나 옷을 벗긴 채 휴대전화로 촬영을 하는 등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14] 또한 성기구를 구해서 여중생들을 성폭행했다. 성 기구를 동원한 집단 성폭행을 하고, 그들은 최 모양 자매에게“불러서 오지 않으면 인터넷에 사실을 공개하고 학교에 소문을 내겠다”며 협박했다.[15] 그리고 이 장면은 준비된 캠코더와 카메라, 핸드폰 등에 그대로 담겼다.
경찰 관계자는 “붙잡힌 학생들이 전혀 범죄 의식 없이 성인 포르노 사이트의 흉내를 냈다는 말에 크게 놀랐다”며 “성인 범죄와 성인 포르노 사이트에 완전 노출된 극에 달한 청소년 성범죄의 한 전형”이라 밝혔다.[11]
추가 피해자 확인[편집]
경찰은 이들이 창원과 밀양 등지에서 여중생 2명을 20여 명이 집단 성폭행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확대했다.[2] 그 결과 2명의 창원시 거주 여고생이 이들에게 강간당했으나 신상 노출을 우려하여 수사협조를 거부했다.
경찰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모두 5명으로 여중생이 2명이고 여고생이 3명이라고 밝혔다. 첫 피해자인 울산의 한 여중생은 집단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신고를 하지 못했다.[3] 이들은 자매가 신고하지 못하게 인터넷, 학교, 부모에게 성폭행 사실을 알린다고 협박했고 이후 2004년 11월까지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이들은 같은 방법으로 창원에서도 여중생을 유인해 20명이 집단 성폭행하는 등 수십 차례에 걸쳐 인터넷 채팅으로 여중생을 유인해 성폭행하고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때는 모두 1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것으로 밝혀졌다.
첫 피해자인 최모 양의 이상행동을 확인한 최모 양 자매의 이모인 강모 씨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대화, 설득을 한 끝에 2004년 12월 경찰서에 신고하게 됨으로써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을 타고 확산된 동영상과 사진들을 통해 피해자들의 신상은 노출되어 소문이 확산된 뒤였다.
경찰관은 “이들이 지금까지 유인한 여중생 5명을 무조건 집단 성폭행하는 등 의식을 잃은 행동을 해왔다”며 “또 두목과 고문을 두고 나름의 행동 강령을 갖는 등 폭력 조직화한 것으로 판단돼 범죄단체 혐의 등에 대해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11] 이들 학생 조직폭력배들은 최양의 집에 쳐들어가 . 그 밖에 창원시 거주 여고생 2명도 이들에게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