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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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850회 작성일 22-10-31 16:32본문
1. 개요[편집]
2. 사고 징후 및 전개[편집]
사고 전 인파 상황[10] |
10월 28일 저녁 이태원 모습이 담긴 블로그 포스트를 보면 사고 전날부터 사고지점 인근인 이태원 뒷골목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매일경제 기사,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사고 전날에도 위험한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다. 유튜버 긴벌레는 29일 저녁에 이태원에서 팬미팅을 진행하려 했는데, 전날 사전 답사로 현장 상황을 보고는 이태원 결집은 위험할 것으로 판단하고 팬미팅 장소를 남산으로 옮겼다.
사고 당일에는 약 10만여 명이 할로윈 기간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모였다. 약 3년 만에 거리두기와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면서 많은 인파가 몰렸다. #1 #2 #3[11]
사고 당일인 29일 저녁에 사고 지점에 인파가 몰리기 시작하며 위험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사고가 발생하기 몇 시간 전 부터 위험을 감지했다. 아프리카TV BJ꽉꽉은 사고 지점에서 사고 발생 1시간 전에 위험한 상황을 겪고 탈출해 인근 파출소를 찾아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12] 한 네티즌은 트윗을 통해 사고 1시간 전에 이미 사고 위치에서 인파에 깔려 소지품도 잃었다가 다행히 탈출했다고 했으며,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고 직전에도 인파 속에서 충격파가 몇 번이나 휘몰아쳤다고 한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사고 전날에도 경찰서에 신고가 많이 접수되는 등 징후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이 징후를 놓치지 않고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 일대 도로 통제 및 차 없는 거리 운영 등 사전 대책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신고를 받고 구급차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도로 영상을 보면 도로가 꽉 막혀 구급차가 현장으로 다가가지 못했으며, 최초 신고 이후 40분 이상이 지난 23시가 되어서야 경찰의 도로 통제에 따른 구급차 진입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문현철 교수는 그 이후에도 구급차가 들어오는 건 가능했지만, 수많은 구급차가 서로 뒤엉키면서 인근 가용 병원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지체됐다고 말했다.
3. 원인[편집]
사망자는 골목 앞줄 5.7미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18.24제곱미터(5.5평)의 공간에서 15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
골목 저지대 입구에서는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인원이 모인데다가 인원 유입 통제(일방 통행 유도 혹은 지하철 승객·차량 통제)가 사전에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이때 입구 쪽 행인끼리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서로 뒤엉켰고, 불편한 표정과 자세를 유지한 채 응급 구조를 기다려야만 했다.
한편 뒤쪽(고지대)에서는 20분만에 막대한 인파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었다. 이 탓에 앞쪽 상황은 순식간에 심각해져만 갔고, 사고 초반 뒤쪽 인파였던 사람들도 앞쪽 라인이 되자 오도가도 못하며 선 채로 눌려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와이파이와 통신까지 먹통인 상황 속에서 뒤쪽 인파는 이때까지도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고[13] 그저 멈출 줄 모르며 내려오고만 있었다.
잠시 뒤, 뒤쪽 인파에서 세 차례 정도 밀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지거나 깔리면서 앞쪽 참변이 가중됐고, 뒤쪽 인파도 빠른 속도로 고립되면서 다중밀집사고(특히 질식)가 발생했다.
콩나물시루처럼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인파가 도미노처럼 넘어지면서 이른바 '연쇄 깔림'이 바로 시작되자마자 올라가려는 사람은 그대로 신체가 뒤로 젖혀져 깔렸고, 내려가려는 사람은 뒤편 인파의 충격량(대략 18톤·초[14])이 가중되면서 서서히 질식해 숨졌다. 이때 밑에 깔린 사망자에게서 장기 파손으로 인한 복부 팽창이 발생했다.[15] 대체로 골격이 약한 20대 여성의 시신이 많이 발견되었고, 마른 체격의 남성, 뼈가 약한 40대들의 피해 역시 막중했다. #[16] 심지어 15세까지 사망자가 있었다.
해밀톤호텔 북측 고지대(뒤편 인파)에서도 사망자가 다수 나왔는데, 이 경우 질식사가 가장 많았다. 소지품을 지닌 사람일수록 협소해진 공간만큼 압력을 더 크게 받았고, 이 때문에 가방이나 큰 지갑을 분실하지 않으려고 흉부 쪽에 들고 있던 여성들이 많이 질식했다. # 게다가 고지대 쪽에서는 인파를 가까스로 빠져나왔어도 호흡곤란 후유증과 크러시 증후군을 못 이겨 실신한 경우가 속출했는데, 이 중 심폐소생술 골든아워를 놓쳐서 안타깝게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17]
골목 저지대 입구에서는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인원이 모인데다가 인원 유입 통제(일방 통행 유도 혹은 지하철 승객·차량 통제)가 사전에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이때 입구 쪽 행인끼리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서로 뒤엉켰고, 불편한 표정과 자세를 유지한 채 응급 구조를 기다려야만 했다.
한편 뒤쪽(고지대)에서는 20분만에 막대한 인파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었다. 이 탓에 앞쪽 상황은 순식간에 심각해져만 갔고, 사고 초반 뒤쪽 인파였던 사람들도 앞쪽 라인이 되자 오도가도 못하며 선 채로 눌려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와이파이와 통신까지 먹통인 상황 속에서 뒤쪽 인파는 이때까지도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고[13] 그저 멈출 줄 모르며 내려오고만 있었다.
잠시 뒤, 뒤쪽 인파에서 세 차례 정도 밀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지거나 깔리면서 앞쪽 참변이 가중됐고, 뒤쪽 인파도 빠른 속도로 고립되면서 다중밀집사고(특히 질식)가 발생했다.
콩나물시루처럼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인파가 도미노처럼 넘어지면서 이른바 '연쇄 깔림'이 바로 시작되자마자 올라가려는 사람은 그대로 신체가 뒤로 젖혀져 깔렸고, 내려가려는 사람은 뒤편 인파의 충격량(대략 18톤·초[14])이 가중되면서 서서히 질식해 숨졌다. 이때 밑에 깔린 사망자에게서 장기 파손으로 인한 복부 팽창이 발생했다.[15] 대체로 골격이 약한 20대 여성의 시신이 많이 발견되었고, 마른 체격의 남성, 뼈가 약한 40대들의 피해 역시 막중했다. #[16] 심지어 15세까지 사망자가 있었다.
해밀톤호텔 북측 고지대(뒤편 인파)에서도 사망자가 다수 나왔는데, 이 경우 질식사가 가장 많았다. 소지품을 지닌 사람일수록 협소해진 공간만큼 압력을 더 크게 받았고, 이 때문에 가방이나 큰 지갑을 분실하지 않으려고 흉부 쪽에 들고 있던 여성들이 많이 질식했다. # 게다가 고지대 쪽에서는 인파를 가까스로 빠져나왔어도 호흡곤란 후유증과 크러시 증후군을 못 이겨 실신한 경우가 속출했는데, 이 중 심폐소생술 골든아워를 놓쳐서 안타깝게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17]
4. 경과[편집]
5. 사고 대응[편집]
- 02시 15분경 소방 당국에서 1차 브리핑을 진행하였다. 브리핑 시각 기준 사상자 집계 결과는 사망 59명, 부상 150명이며 #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압사 사고이다.
- 02시 40분경 소방 당국에서 2차 브리핑을 진행하였다. 브리핑 시각[18]기준 사상자 집계 결과는 사망 120명, 부상 100여 명이며 부상자 중 일부는 사망자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 04시 00분경 소방 당국에서 3차 브리핑을 진행하였다. 브리핑 시각 기준 사상자 집계 결과는 사망 146명, 부상 150명으로 변경되었다.
- 05시 00분부로 6호선 상/하행선 임시열차를 편성해 운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열차들은 4시 57분경 예정대로 이태원역에 도착하여 5시 정각부터 양 방향으로 운행하였다. 서울교통공사 트위터
- 06시 30분경 소방 당국에서 4차 브리핑을 진행하였다. 브리핑 시각 기준 사상자 집계 결과는 사망 149명, 부상 76명으로 변경되었다.
- 09시 40분경 소방 당국에서 5차 브리핑을 진행하였다. 브리핑 시각 기준 사상자 집계 결과는 사망 151명, 부상 82명으로 변경되었다.
- 치료 중이던 중상자들이 사망하여 4차 브리핑 당시에 비해 사망자가 2명 추가되었고, 부상자는 6명이 늘었으며 전체 부상자 중 중상자는 19명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 13시 30분경 사망자 151명 가운데 140명의 신원 확인이 완료되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11명에는 주민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외국인이나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20시 55분경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에서 브리핑을 진행하였다. 브리핑 시각 기준 사상자 집계 결과는 사망 153명, 부상 133명으로 변경되었다.
- 23시 경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에서 브리핑을 진행하였다. 브리핑 시각 기준 사상자 집계 결과는 사망 154명, 부상 132명으로 변경되었다.
- 31일 06시 경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에서 브리핑을 진행하였다. 브리핑 시각 기준 사상자 집계 결과는 사망 154명, 부상 149명으로 변경되었다.
병목 지형이란 현장의 특수성 때문에 사고 현장에 적시에 도착한 구급대원의 수가 모자랐고 이에 사고를 당한 이들의 지인이나 생면부지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조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6. 사망자 현황
사망자 1명의 신원이 계속 확인되지 않고 있었는데 등록된 지문이 확인되지 않고, DNA 대조군도 없어서 여성이란 것을 제외하고 신원을 전혀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경찰은 17세 이하 미성년자거나 밀입국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으나,# 이후 31일 오후 2시에 40대 후반의 내국인 여성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
7. 여파[편집]
- KBS 뉴스특보와 전화 연결된 현장 목격자에 따르면, 사고 발생 이후 인근 상가들은 안전을 위해 영업을 종료하고 손님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안내했다고 한다. 구조에 비 협조적이었다는 의견이 있으나 현장 경찰 및 소방 인력에 의해 상가 내부 인원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통제되었다는 증언도 존재한다. 이는 사고 발생지의 혼잡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
- 사고 발생 후부터 수습 전까지 이태원역 일대를 지나는 시내버스는 이태원로 녹사평역 ~ 한강진역 구간 통제에 따라 우회운행한다. 현재 대사관로 ~ 한강진역 구간은 통제가 해제된 상황이다.
- 서울시는 인파를 분산시키기 위하여 새벽 3시 50분부터 녹사평역~서울역 간 셔틀버스 2대를 운행하였으며 서울 지하철 6호선은 심야 임시편 운행 및 새벽 5시에 조기 운행을 시작하였다.
- 수도권뿐만 아니라 충청도와 강원도 소속 구급차들도 사고 현장에 동원되었다. 119 구급차 경기 50대, 인천 10대, 충남 10대, 충북 10대, 강원 10대, 서울 52대가 사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구급차 동원 현황 뿐만 아니라 소방당국의 요청에 사설구급차와 병원, 보건소구급차도 동원되었다. [29]
- 사상자들은 강북삼성병원, 건국대병원, 경희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동국대 일산병원, 이대목동병원, 이대서울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보라매병원, 중앙대병원, 순천향대 서울병원, 삼육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은평성모병원, 한양대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동탄성심병원, 순천향대 부천병원, 노원 을지대병원, 의정부 을지대병원, 의정부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성빈센트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 등 40~50여 개의 병원 및 사망자의 경우 수도권의 타 장례식장등에 분산 이송되었다. #
- 사고 현장과 가까운 한남동 소재로 사상자가 많이 이송된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의 경우 영안실조차 가득 차서 다른 곳으로 사망자들을 이송하였다.
- 사고현장에서 전화 및 데이터 통신이 원활하게 되지 않았으나, 새벽 2시 33분을 기준으로 다시 정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