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회복에 이르는 길 > 자료실

중독이 진행되면서 찾아오는 뇌 손상에 의한 필연적인 과정 중 하나가 ‘조절 능력의 상실’이다.
예컨대,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오고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한다는 느낌이 온다. 그걸 우린 만족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만족이 오면 우리 뇌에서는 그만하라는 만족∙조절 스위치가 켜진다. ‘배가 부르니 숟가락을 내려 놓아라’, ‘많이 취했으니 그만 마셔라’ 뇌에서 이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만족∙조절 스위치가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무시하고 폭식을 하거나 폭음을 하면 어느 순간, 그 만족∙조절 스위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늘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되고,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망 때문에 늘 불행하다.

이렇게 만족∙조절 스위치가 고장 난 상황을 우리는 ‘중독’이라고 부른다. 이 스위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고장 나고 악화된다. 문제는 이런 우리 몸의 자동제어 시스템이 얼마나 고장 났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도 모르게 고장이 나 버리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한번 고장 나 버린 우리 뇌의 조절스위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10년, 20년을 단주했어도 한 잔 술에 조절이 되지 않아 다시 중독자의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 바로 알코올 중독이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불청객을 돌려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알코올 중독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소중한 수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면서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음주로 인해 돈, 직장, 건강뿐만 아니라 체면과 도덕성, 믿음과 신뢰를 잃어 버린다. 정서적 의사소통능력과 조절능력을 상실하고, 이로 인해 동료와 친구 그리고 가족 관계를 망쳐 버린다. 결국은 내 자신의 삶과 인생 그리고 미래, 심하게는 목숨조차도 앗아가는 것이 바로 알코올 중독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이다. 음주로 인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위험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첫 번째이다. 그리고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까운 알코올 상담센터나 중독 상담이 가능한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중독의 위험 신호는 필름이 끊기는 현상 이외에도 술자리를 2차, 3차 가진 이후에도 집 앞에서 한 잔 더 하거나, 술을 사서 귀가한다면 중독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나타나는 중독의 위험신호는 주위에서 친구, 동료, 가족이 “술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변에서 권유할 때,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알코올 중독은 한 순간에 내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독은 만성적인 반복 음주에 의한 만성 뇌 질환이기 때문에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은 곧 우리 뇌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이라고 해서 단순히 술을 마시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알코올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은 또한 의사소통의 회복이며, 관계의 회복이고, 자존감의 회복이다. 궁극적으로는 중독으로 잃어버린 자신의 삶과 인생, 그리고 미래의 회복이며 긍정의 회복이다.

뇌의 회복은 매우 천천히 일어난다. 치료자 또한 중독자가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은 긴 여행과도 같아서 어느 날 한 순간의 깨달음이나, 대오각성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끊을 수 있는 특수한 테크닉이나 기술적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음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세상을 이해하고, 중독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결국 그것을 통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일종의 마라톤과 같은 것이다.

알코올 중독의 회복 과정에서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중독자 본인이 음주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 출발은 ‘수긍’이다. 중독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술을 꼭 끊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절박함도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자를 치료할 때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동기를 높이는 것이다.

변화의 동기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의사소통을 시작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술로 인해 나쁜 점들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폐해들을 겪었는지, 술로 인해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등등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진심을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겪어온 문제들을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면서 그간 경험해 온 음주 문제들을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변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독자들의 의사소통 능력은 조금씩 회복되어 간다. 의사소통 능력의 회복은 향후 관계의 회복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하지만, 자신이 중독자임을 깨닫고 인식하는 과정은 치료의 완성이 아니라 곧 새로운 시작이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성공과 실패의 유일한 차이점은 실행력이다”고 말했다.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단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과 단주를 결심한 것, 실제로 단주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흔히 알코올 중독자들은 결심만 할 뿐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킬 수 있는 자신과의 약속은 기필코 지키어 나가며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평생 술을 안 먹겠다는 약속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 단주를 실천하는 것은 지킬 수 있는 약속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세 끼 밥 먹는 시간, 약 챙겨 먹는 시간, 외래 혹은 치료 모임을 참석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것은 알코올 중독의 치료에 있어 가장 기본이다.
단주를 실천함에 있어서도 하루하루 이런 일상의 기본적인 것들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실천은 동반하지 않으면서, 술을 안 먹겠다고 참는 것은 지금 당장은 술을 안마시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술을 다시 마시겠다는 의지의 표현과 마찬가지다.

중독자들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자포자기 하는 경우가 많다. 자존감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작은 성공을 통한 성취감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경험을 통해서만 자존감은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중독의 회복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반복되는 재발도 지나고 보면 회복의 과정이었다고 회복자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따라서 중독자가 재발을 반복하더라도 치료자 역시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독자가 변화와 회복에 대한 동기를 갖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본질적으로는 불안과 공포 때문이다. 금단 증상에 대한 공포, 새로운 삶에 대한 불안, 그리고 그동안 단주를 수없이 결심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좌절했던 또 다른 실패에 대한 공포다. 설령 중독자 자신조차도 스스로의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일 수 있다. 하지만 치료자가 그에 대해 탄탄한 신뢰와 믿음을 가져 준다면 중독자는 절망감과 패배감을 극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알코올 중독의 회복에 왕도는 없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끊임없이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것 말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