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모방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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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55회 작성일 22-11-18 11:12본문
요즘 '등골 브레이커'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등골 브레이커’는 명품을 사기 위해 자기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부러뜨릴 정도로 극성인 ‘철없는 청소년’에게서 나온 은어이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입고 나와 유명해진 점퍼부터, 가방, 신발 등에 이르기까지 등골 브레이킹 아이템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 같은 명품 아이템들은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명품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명품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가 청소년들이 또래 집단에서 주목 받는지, 소외되는지의 여부를 결정지을 정도다. 과연 청소년들에게 명품은 어떤 의미이고, 청소년들이 명품을 선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자아정체감 확립하는 청소년기
청소년들의 ‘명품 선호 현상’에 대해 알아보려면 먼저 청소년 시기의 특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기는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a period of storm and stress)’로 표현된다. 심리학자 스탠리 홀이 칭한 이 용어는 아동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서 갈등과 혼돈을 경험하게 되고, 이로 인해 거친 바람과 화난 파도처럼 감정의 변화가 심한 청소년기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말이다.
이는 최근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듯 퍼져있는 말 중 하나인 '중 2병'과도 상통한다. ‘중 2병’은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빗댄 말로, 자아 형성 과정에서 ‘자신은 남과 다르다’ 혹은 ‘남보다 우월하다’ 등의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청소년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춘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항과 멋부리기 성향은 이런 ‘중 2병’의 특징이다. 이 말에는 청소년기에 그들이 자아형성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청소년기의 심리 발달학적 이론을 연구한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은 “인간의 전 생애의 각 단계마다 수행해야 하는 발달 과업이 있는데, 그중 청소년기에 최대의 발달 과업은 '자아정체감의 확립’이라고 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시작하면서 ‘나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남들과 자신이 다름을 인식하게 되고, 나만의 것을 찾아내게 된다. 자신의 개성을 중시하고, 자아중심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청소년기의 필연적 특징인 것이다.
명품으로 특별함을 드러내는 청소년들
청소년기의 특징은 겉모습을 꾸미는 것에서도 드러나게 된다. 그들은 옷이나 액세서리와 같은 겉모습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고 싶어한다. 단순히 부모가 사주는 옷을 입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옷을 사고 싶어하는 것도 그런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엄마가 모처럼 큰 맘 먹고 백화점에서 사 준 비싼 옷은 옷장에 처박아 두면서도, 자신이 인터넷을 뒤져서 고른 오천원짜리 티셔츠는 헤질 때까지 입고 다니는 청소년들이 바로 그런 예다.
또한 청소년들은 옷을 통해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정체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같은 동아리 아이들끼리 드레스 코드를 정해 놓고 똑같이 입고 다니는 경우다. 청소년들은 같은 또래 집단에서 이질적으로 보이면 자신이 뒤쳐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나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유행하는 브랜드를 입지 않을 때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거나,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웬만한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명품이나 희소성이 있는 특별한 것들을 가지면서 자신의 특별함을 나타내고 싶어한다. ‘겉으로 보이는 브랜드가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을 과시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자신을 좀 더 특별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은 화려하고 유명한 국내외 연예인들을 동경하면서 그들처럼 되길 원한다. 그래서 그들을 모방한다. 그들이 입는 옷이나 걸치는 액세서리 등을 착용하면 그들처럼 유명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또래 아이들과 차별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소년 명품 선호 현상 ‘사회의 책임’… 사회적 분위기 바꾸어야
이러한 명품 선호 현상의 이유에는 청소년들의 심리적인, 발달학적인 심리가 깔려 있지만 사회적인 분위기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부모들의 '자식 귀족화'다. 내 자식만은 최고로 키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중년 부유층들이 자식들에게 최고급 명품의 옷을 입히는 행위는 명품 선호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게다가 마케팅 시장에선 이러한 청소년들의 명품 선호 현상을 더욱 부채질한다.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청소년층을 신소비 계층으로 보고, 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잇 브랜드(it brand)'로 불리며 급성장하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 제품을 사지 않으면 또래의 무리에서 소외될 거야”, “이 제품은 너를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야” 등으로 제품 마케팅에 청소년들의 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메시지 전략을 심어놓는다.
그렇기에 부모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까지 이를 얻고자 하는 청소년들을 단순히 비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어린 나이부터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며,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어른들의 책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의 브랜드 선호 현상을 둘러싼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청소년들이 진정한 ‘자아정체감’을 확립해나가는데 이러한 현상은 ‘독(毒)’이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타인과 다른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진정한 자아정체감을 확립하도록 하는 것이 청소년기의 제대로 된 발달과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자신을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 외모 등으로 평가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어른들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경과 모방의 아이들 (정신이 건강해야 삶이 행복합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