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차별 그리고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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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34회 작성일 22-11-24 11:46본문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 할 때, 우리의 삶은 종말에 가까이 다가선 것이다”
- 마틴 루터 킹 -
“사람들은 힘세고 똑똑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아파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 오스틴의 휴먼에세이 <나는 희망을 던진다> 중 -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거기서 비롯된 차별은 꽤 오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치기 어려운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잘못된 오해가 쌓인 것이다. 정신질환이 기전을 이해할 수 있는 질병이 된 지금에도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공고하다.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대응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데 있다. 편견이 두려워 자신의 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늘어나면서 정신질환에 노출된 사람들이 증가하는 요즘,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일은 특정한 환자가 아니라 언제든 똑같이 질환에 고통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인권을 위하는 일이다.
편견
편견은 다름에 기인한다. 어떤 다름인가 하면 부정적 의미로서의 다름이다. 유명한 배우들과 일반인도 물론 ’다르다’. 외모도 다르고, 얼굴 크기도 다르다. 그렇지만, 남들보다 훨씬 잘생긴 외모는 편견의 대상이기보다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편견은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대상, 또는 현상에 한하여 나타나게 된다. 성적 소수자, 매춘부, 범법자, 노숙인, 정신질환자들이 아마도 대표적 편견의 대상일 것이다.
차별
차별은 힘에 기인한다. 힘이 약한 사람들은 힘센 사람들을 차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약한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시위한다. 우리도 이렇게 모이면 힘이 있다고 말이다. 차별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직접적 차별(direct discrimination)은 말 그대로 대놓고 차별하는 것이다. 흑인이니까 안 돼, 전과가 있으니까 안 돼, 정신질환자니까 안 돼 등등 ‘무엇’이니까 또는 ‘누구’이니까 안 된다는 식의 차별을 말한다. 대개의 직접적 차별은 흔하게 나타나지만 대외적으로 “나 이런 사람들 차별합니다”라고 공개하지 않고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조적 차별(structural discrimination)은 사회구조적으로 특정 대상이 일반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없거나 혹은 경쟁에서 아예 배제되는 상황을 말한다. 정신질환자이기에 법적으로 할 수 없는 직업이 생기고, 정신장애인이라고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당하기도 한다. 구조적 차별은 직접적 차별보다 사회적으로 공식화된 차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직접적 차별과 잘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내재화된 차별(internalized discrimination)은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에게 가하는 차별을 말한다. 이는 그동안 경험한 차별로 인하여 학습된 결과일 수 있다. 이를테면 취업 면접 자리에서 면접관이 묻지 않아도 “저 정신질환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솔직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질환인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줘야 한다’라는 절박함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스스로가 자신의 질환을 고혈압이나 당뇨 등과 같은 신체질환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받는 차별에 분노하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그 차별에 수긍을 하고 어쩔 수 없다며 차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권
인권이라는 단어는 참 어렵고 무겁게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그러한 인간이 누릴 당연한 권리를 이야기하지만 인권을 목청껏 부르짖기에는 왠지 자신도 없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동안 ‘인권’은 불우한 노동자의 이야기, 삶의 끝에서 집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 산 속 깊은 시설에 갇혀 있는 장애인들의 불쌍한 이야기 그리고 사회운동에 뛰어든 매우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권이란 모든 사람들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사와 부하직원,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등,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인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인권은 정말로 너와 나의 이야기이며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인권을 바라보게 될 때,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다가설 수 있다. 동정의 의미가 아닌 우리 삶의 의미로서 말이다.
정신질환자들의 인권 지키기
서울시정신보건센터에서 발표한 “인권증진을 위한 현명한 전략_advocacy”(2010)에 의하면, 서울시 정신보건시설에 등록되어 정신보건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당사자 1,5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당사자 중 45.3%가 일상 생활에서 인권침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인권침해 경험을 하였을 때 50%는 무시하거나 참았다고 응답하였고, 전문가에게 도움 요청을 한 경우가 12%,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12%, 직접 항의한 경우가 11%, 그리고 공식적으로 대응한 경우는 4%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렇게 인권침해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여, 유사한 정신재활서비스를 제공받아도 삶의 만족도, 자신감, 재활을 위한 회복노력의 점수가 낮게 나타나고 있었다. 즉, 인권침해를 받은 당사자의 경우 자신의 회복과 재활을 위한 노력,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고 스스로를 대변해야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인권을 지켜나가는 일은 크고 무거운 일이 아니다. 특별한 실천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존중 받아야 할 권리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되는 일이다. 내가 존중받고 싶다면 같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면 되는 일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잊지 않으면 되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