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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연쇄살인 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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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72회 작성일 22-12-2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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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6년부터 1994년까지 8년간 이춘재가 저지른, 혹은 저질렀다고 주장 중인 범행들 중 연쇄살인 이외의 범행들을 정리한 문서. 아래의 목록은 이춘재가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을 모두 적은 것으로, 대부분의 사건이 아직 진위 확인 중이라는 점을 유의하고 읽을 것.

현재 이춘재의 자백 후 사실 확인 중인 사건은 14건의 살인 사건[1]과 추가적인 30여 건의 강간 및 강간 미수 사건들이다.

사건이 밝혀진 순서는 다음과 같으며 경찰 발표 기준이다.

2. 1986년[편집]

2.1. 화성군 태안읍 일대 연쇄 강간 사건[편집]

이춘재가 1986년 1월 군 전역 후 2월부터 7월까지 알려진 것만 7차례에 걸쳐 일으킨 연쇄강간 사건이다. 장소는 진안리와 그 근처로 이후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과 비슷하다. 이후 동년 9월 15일에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첫 번째 살인사건이 강간을 하려다 우발적으로 살인에 이른 것으로, 이 범행과 연결된다. 범죄 프로파일러인 펫 브라운 박사는 연쇄 강간 사건과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동일범이라며 "저에게 범인이 어디 사는지 지목하라고 한다면 처음 강간당한 여자가 사는 곳 근처라고 말하겠어요"라고 말함. 실제 이춘재는 사건 발생 장소인 태안읍 진안리에 살고 있었다.

1차 사건은 1986년 2월8일 오후 8시에서 오후11시50분께 처음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는 당시 20세 회사원 최모씨로 태안읍 진안리 367번지 앞 도로를 지나가던 중 원바리 고개 묘지 근처에서 검정색 장갑을 낀 신원 미상의 남성으로부터 흉기로 찔린 뒤 성폭행 당했다.

2차 사건은 3월20일 발생했다. 피해자는 22세의 회사원 정모씨로 태안읍 황계리 논둑을 지나가던 중 범인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끌고가 성폭행했다. 범인은 욕설을 하며 스타킹으로 양손을 뒤로 결박하고 범행했다.

이어 3차 사건은 같은 해 4월3일 일어났다. 피해자는 27세 여성 오모씨로 수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황계리 입구에서 하차하여 농로 길을 걷고 있을 때 범인이 뒤에서 나타나 흉기로 찌르는 등 위협하고 성폭행했다.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는 속옷 등으로 양손이 결박당했다.

다음 사건은 4월25일 발생했다. 피해자는 39세 식당종업원 김모씨로 병점 5리 진입로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개천뚝 병점 느티미 다리를 지나가던 중 뚝 아래에서 범인이 나타나 한손으로 뒤에서 입을 막고, 흉기로 옆구리를 찌르는 등 위협하고 성폭행했다. 범인은 피해자 팬티스타킹을 벗겨 반으로 절단, 손을 뒤로 묶고 발을 묶어 양말로 재갈을 물렸다.

5차 사건은 5월8일 일어났다. 피해자는 43세 가정주부 박모씨로 태안읍 진안리 입구 쌍무덤 묘소 앞을 지나가던 중 범인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흉기로 옆구리 등을 찌르고 2회 성폭행했다.

여섯번째 사건은 5월14일 발생했다. 피해자는 48세 여성 심모씨로 병점리 산업도로 비상활주로를 따라 병점 방향으로 걸어오던 중 범인이 뒤에서 나타나 손으로 입을 막고 흉기로 옆구리를 수회 찌르고 현금 20만원을 강탈하고 성폭행했다.

마지막 7차 사건은 7월 중순께 발생했다. 피해자는 19세 여학생 장모양으로 황계리 경부철도 부근을 지나던 중 범인이 뒤에서 따라와 껴안고 옆구리에 흉기를 대고 위협한 뒤 성폭행했다. 입을 막고 스타킹을 사용해 양손을 뒤로 결박한것이 이춘재의 범행과 매우 유사하다.

2.2. 폭행 납치 사건[편집]

화성 2차 사건과 3차 사건 사이인 11월 20일에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 한 성당 근처에 있는 지인 집에 들린 뒤, 오후 8시30분께 귀가하던 36세 여성 정모씨가 맞은편에서 오던 범인에게 공격을 당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피해 여성은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데 '꼼짝없이 죽는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폭행을 멈춘 괴한은 피범벅이 된 얼굴을 감싸고 있던 정씨를 끌고 어둠 속 논밭에 숨었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인근에 있는 똥밭에 나뒹굴었고, 괴한은 정씨의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2.3. 납치 살인미수 사건[편집]

1986년 11월 30일 밤 9시 쯤, 태안읍 정남면 보통리에서 45세 여성 김모씨가 범인에게 피습을 당했다. 범인은 김씨를 흉기로 수차례 찌른뒤, 김씨를 끌고 다니다가, 용의자에게 “끌려올 때 가방을 떨어뜨렸다”고 거짓말을 했고, 용의자가 가방을 찾으러 간 사이 도주했다. 이 여성이 진술한 용의자의 생김새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와 비슷했다.  

3. 1987년[편집]

3.1. 수원 여고생 강간 살인 사건[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수원 여고생 강간 살인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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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89년[편집]

4.1.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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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수원시 강도미수 사건[편집]

1989년 9월 26일 이춘재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A씨의 집에 면장갑과 흉기를 들고 대문을 통해 침입, 방문 앞에서 집안을 살피다가 집주인에게 발각되었고 바로 체포되었다. 이춘재는 "낯선 청년에게 구타를 당해 그를 쫓다가 A 씨의 집에 들어가게 됐을 뿐, 강도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1990년 2월 7일 수원지방법원은 1심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으나 이 씨는 항소했고, 4월 19일 열린 2심에서 피고인이 초범이고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경미한 점을 감안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 이 씨는 201일 만에 구금상태에서 풀려났다. 이때 판결문에 적힌 이 씨의 감형 사유 중에서는 "가정형편이 어려웠다"는 점도 있었다.##

이춘재는 야외 강간살인 패턴을 꾸준히 유지했는데 유독 이 사건은 뜬금없이 다른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다. 그런데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중 1988년 9월 16일 8차 사건이 남의 집에 침입하는 방식이었던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 8차 사건은 당시 모방범죄로 밝혀져 윤 씨가 붙잡혀 20년형을 받고 2019년 기준 출소한 상태인데, 2019년에 붙잡힌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마침 이 가택침입 시도 사건은 8차 사건 이후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만일 8차 사건이 이춘재의 범행이 맞다면 8차 사건으로 한 번 가정집 침입 범행을 성공한 후 약 1년이 지나 한 번 더 시도하려다가 집주인에게 발각당해 붙잡혔고, 주택 침입 방식은 2번째만에 실패하면서 남의 집에 숨어드는 게 더 위험한 것 같으니 9차 사건부터는 원래대로 야외범행 방식으로 회귀했다고 볼 수 있다.

혹은 8차 사건이 이춘재의 범행이 아니라 모방범죄라고 해도, 이춘재가 사는 진안리에서 벌어진 8차 사건 소식을 이춘재는 당연히 접했을 테고 진범이 모방범죄를 어설프게 따라해보려다가 실패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춘재는 6차 사건 때 주민신고 받고 조사받아 겁을 먹어 7차는 평소 주로 선택하던 범행장소에서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벌였던 것처럼, 이춘재는 6~7차 즈음부터 자신의 범행 패턴을 조금씩 바꿔서 수사를 혼란시키는 시도를 한 정황이 보인다.

아니면 8차 사건 이후 그동안 수사대상에 오르지 않다가 몽타주가 만들어져 배포가 되었고 경찰에게서 음모를 채취 당하는 등 수사선상이 자신에 좁혀지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실제로 8차 사건의 경우 이춘재가 자신의 음모를 경찰에 제공했는데 경찰은 방사선 동위원소 방식으로 검출한 결과 납땜, 전자부품 연소과정에서 체내에서 축적된 중금속을 검출하여 범인의 직업을 알아내려고 했고 그 동시에 혈액형이 B형인 자를 대상으로 수사한 결과 하필 윤성여씨가 농기계 수리업에 종사했던 바람에 중금속이 검출되었고 이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춘재 역시 전자부품 회사에서 일하면서 체내에 중금속 물질이 검출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볼 때 혈액형이 O형이 범인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했었다면 이춘재가 8차 사건 이후에 검거가 될 수 있었다. 어째든 이춘재 입장에서 운좋게 수사의 방향이 빗겨나가는 바람에 검거의 위험에서 모면하였으나 분명 심리적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고 10개월 동안 공백기를 가지며 범행을 저지르지 않다가 8차사건 이후 10개월 후인 89년 7월에 초등생 여아를 대상으로 또 범행을 저지르고 살인에 중독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는 동시에[3] 그렇다고 살인욕구를 끊을 수 없으니 아예 범행장소를 수원으로 옮겨 8차 사건에 성공했던 범행방식을 주거침입으로 바꾸다 검거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 또한 존재한다.

5. 1991년[편집]

5.1.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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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청주 부녀자 납치사건[편집]

위의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김 모 씨(32)가 1991년 1월 26일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공사 현장 근처에서 약을 사서 귀가 하던 중 공사장 배수로로 납치 되어 결박 당했다가 탈출한 사건.

범인은 피해자의 뒷목을 붙잡은 뒤 근처 하수도로 끌고갔다. 김씨는 "손에 낀 금반지를 줄테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범인은 "살고 싶으면 입 닥쳐라"고 욕을 한뒤 피해자의 바지를 벗겨 머리에 씌우고 스타킹으로 다리를 묶는 등 피해자의 옷가지로 결박하는 등 이춘재의 범행과 동일한 양상을 보였다. 피해자는 범인이 한눈을 판 사이 몸을 흔들어 결박을 풀고 배수로를 기어 나간 후 택시를 타고 탈출 했다고 한다. 납치 당시 끙끙대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 자신 외에 이미 납치 된 사람이 있음을 느꼈고, 탈출 후 경찰과 현장을 다시 찾았지만 이미 범인과 피해 여성은 사라지고 없었다. 납치 당시 같이 있었던 여성은 정황상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박 모 양(17)으로 추정 된다.

6. 1992년[편집]

6.1. 청주 주부 살인사건[편집]

1992년 6월 24일 청주시 복대동에서 가정주부 이모씨(28)가 피살된 사건. 이춘재가 자백한 청주에서의 2건의 살인 사건 중 하나다. #

피해자는 한 상가주택에서 하의가 벗겨지고 전화줄로 목이 졸려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현장 지리에 익숙한 사람의 소행일것이라고 추정했고, 사건 현장에서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나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나왔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피해자의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끝내 단서를 잡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사건이다.

위의 청주 여공 살인사건과 본 사건은 모두 이춘재의 신혼집 인근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

7. 1994년[편집]

7.1. 청주 처제 살인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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