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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 살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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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40회 작성일 22-12-2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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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서울의 고급 요정 종업원인 정인숙(鄭仁淑, 당시 25세)이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부근 강변3로에서 교통사고를 가장하여 총격 암살된 사건으로, 제3공화국 시절 벌어진 대표적 의문사 사건 중 하나이다.

정인숙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어 생존했다.

TV 프로그램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상세히 다뤘다.

2. 배경[편집]

정인숙은 명지대학교 중퇴 후 KBS 라디오 방송 작가인 장사공과 사귀었다. 당시 장사공은 KBS 방송국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할 만큼 인기 작가였고, 정인숙은 곧잘 친구들에게 "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라며 자랑했다. 이 과정에서 정인숙은 장사공과 깊은 연애 관계에 빠져, 한 때 장사공의 아이까지 임신했으나, 도저히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둘이 합의를 한 끝에 낙태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인숙의 지나친 사치와 오만한 성격을 견디다 못한 장사공은 정인숙과 헤어졌다. 장사공은 KBS 방송국의 최고 인기 작가여서 수입이 꽤나 컸으나, 그런 장사공조차 감당이 안 될 만큼 정인숙의 사치과 낭비벽이 지나쳤다.

자신에게 그동안 생활비를 주던 장사공과 헤어지자 먹고 살 걱정이 막막했던 정인숙은 자신의 뛰어난 외모를 살려 선운각이라는 요정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 미혼인 상태로 아들을 한 명 출산하였는데, 그 아들이 당시 정권 최고위층의 자녀라는 소문이 있어서 정치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 사이에서도 큰 스캔들이 되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정인숙의 수첩에 각계 고위 인사의 이름과 연락처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재벌 회장님 몇 명과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 이후락 주일 대사,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 등의 고위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박정희 대통령[1]까지 적혀 있었다.

특히 당시 국무총리인 정일권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혔다.[2]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서 이 사건을 다룬 기사에도 정일권의 사진이 실렸다. 심지어 국회에서 신민당 조윤형 의원은 대정부 질문 중에 대학가에서 이런 노래가 떠돌고 있다면서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개사한 노래를 직접 불렀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 할 것 같으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영원히 우리만 알았을 것을
죽고 나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이 외에 정종욱이 정일권을 찾아가서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꽤 오래 돌았다. 20년 후 친자확인소송까지 나왔다. 정인숙의 아들 정성일이[3] 미국에서 자라서 성인이 된 후, 한국으로 와서 정일권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자신을 길러준 외할머니(정인숙의 어머니)에게서 "네 아버지는 정일권"이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친자확인소송 중간에 정일권이 사망하면서 소송은 유야무야되고 정성일도 미국으로 되돌아갔다.[4]

3. 수사 결과와 의문점들[편집]

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오빠 정종욱으로 밝혀졌다. 정종욱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말을 듣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폭언을 가하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암살하고 강도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 결과에 대한 의혹이 있었고, 사건 수사를 성급히 종결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후에 정종욱은 자신이 죽였다는 것은 내외적인 압박에 의한 것이었으며, 사실은 정부기관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총을 쏜 것이라고 2000년 10월 8일자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5] 당시 정인숙의 총상을 보면 운전석 혹은 왼쪽 창 밖에서 쏘아야 각도가 나왔는데, 운전석에 앉은 상태에서 몸만 돌려서 총을 쏘면, 총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서 화약흔이 남는다. 당시 수사에서는 정종욱에게서 화약흔이 발견되었다고 범인의 증거로 지목했지만[6], 정인숙의 화약흔은 언급도 없었다.

그리고 정인숙은 일개 호스티스라고 알려졌지만 경악스럽게도 1960년대 후반에 일반인들은 그림의 떡인 해외여행까지[7] 다녀올 정도로 입지가 꽤 높은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외로 다녀오는 것은 커녕 비행기 한 번 탔다고 하면 동네 자랑거리였던 시절이었던 데다가, 이 시기 정부 고관들도 단수여권으로만 해외여행이 가능했으나 정인숙은 당시로서는 희귀한 복수여권으로 여행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1969년 일본을 여행하러 갔을 때에는 놀랍게도 야쿠자들이 경호를 맡았다. 온갖 소문과 음모론이 나올 법했다.

4. 대중매체에서

1989년작 영화 <빨간 여배우>도 <서울 무지개>와 비슷한 주제를 다뤘지만, 이 영화는 딱히 정인숙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기보다는 모 여배우가 전두환과 성관계를 가진 후 이순자에게 끌려가 성고문을 당하고 자궁을 적출당했다는 당시 널리 퍼져있던 연예계 찌라시[8]를 모티브로 하였다.

배우 강리나가 정인숙 역을 맡았는데, 일본 촬영 당시 야쿠자들이 알아서 공짜로 보디가드를 맡았다고 한다. 예전에 진짜로 정인숙을 호위하던 야쿠자[9]들이 간부가 되어서 정인숙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부하들을 보내 무상봉사 해줬다고 한다. 당시 제작진이 조심스럽게 정인숙에 대하여 질문하자 자세히는 모르지만 엄청난 거물급 귀부인 정도로 기억한다는 대답까지 했다고 한다.[10]

다만 영화는 비평이나 흥행은 쫄딱 망해서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로 감독은 90년대 유명 비디오 영화 <젖소부인 바람났네>를 감독한 김인수다. 80년대에 <원한의 공동묘지>, <삼국여한>, <공포의 축제> 같은 호러 영화로 인기를 끌던 감독이기도 하다.

한동우/병수씨의 웹툰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가 정인숙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고, '하미우'가 정인숙을 모델로 한 작중 캐릭터이다.

1993년 KBS1 <다큐멘터리극장>에선 재연극 형식으로 2부에 걸쳐 다룬 바 있는데, 배우 김현정이 정인숙 역을 맡았다. 그러나 양영채 기자는 <동아일보'안방극장 긴급진단' 3회를 통해 내용 면에서 정인숙의 애정행각에 편중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언급했고, 에피소드 타이틀과 달리, 그녀가 남겼다는 비밀수첩은 찾지 못했으며 당시 이미 논의된 이야기에서 별 진전이 없다고 평했다.

5. 정종욱의 해명[편집]

한편 정종욱은 1989년 출소한 다음, 자신은 정인숙을 죽이지 않았고 실은 고위층이 정인숙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이려 했다고 주장하였다. 2010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을 방영하였는데, 사건 검증 결과 직접 차량 안에서 총격을 가하지 않고도 정인숙을 저격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사건을 재조사한 감식 전문가는 정종욱의 허벅지에 남은 총상도 타인의 개입으로 생겼을 정황이 충분함을 주장했다.#

사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미 오래 전인 1990년대 문성근이 진행할 때에도 다룬 바 있었다. 당시엔 정인숙의 아들 정성일이 커서 인터뷰하며 얼굴을 보였는데, 정성일도 오빠 정종욱이 죽였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배후설을 주장했다.

6. 정종욱이 범인이라는 주장[편집]

월간조선 1993년 5월호에서는 정종욱이 범인이 맞다는 기사를 냈다.
앞뒤 안 맞는 정종욱의 항변
그것은 정인숙사건이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 순수한 형사사건의 성격이며, 범행여부도 사건 자체의 울타리 안에서 판가름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당시 사건 현장의 정황과 남겨진 증거물, 진술 내용이 결국 단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판대 위에 정종욱 씨가 최근 자신이 결백하다고 한 진술내용을 올려놓아보자.
(1) 범인: 그는 사건 발생 직후 40대 괴한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흉기는 칼빈이라고 했다가 권총으로 번복했다. 출소한지 2년 뒤인 91년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범인은 두 명이었고, 그중 한 명은 얼굴에 흉터가 있었다고 구체적으로 못박았다. 또 같은 해 모 스포츠신문에 연재했던 자신의 수기에서는 신장 1m75cm 가량의 20대 남자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93년 4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공포에 사로잡혀 앞만 바라보고 운전했기 때문에 범인을 본적이 없다고 다시 부인했다. 그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어온 셈이다.

7. 기타[편집]

정치권의 실세와 엮인 미제사건이니만큼 음모론도 다양했고 온갖 도시전설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정인숙이 희대의 명기였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인숙의 을 보관하고 있다'라는 도시전설이 현재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정인숙의 시신을 국과수에서 부검한 것은 사실이나 성기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관련 기사), 일제강점기 당시 여러 남자의 의문사와 관련된 기생 명월의 성기를 보관하고 있던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관련 기사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 중 하나로 꼽히는 '몽골 모델 살인사건'이 국내에서는 말레이 판 정인숙 살해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나집 라작 前 총리의 측근인 말레이시아 정치 분석가 압둘 라작 바긴다와 내연관계였던 몽골 출신의 모델 알탄투야 샤리이부가 살해되어 시신이 쿠알라룸푸르 외곽 정글에서 발견됐다. 정인숙과 마찬가지로 총격으로 살해당했으며, 내연녀와 헤어지고 싶었던 압둘 라작 바긴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나집 라작 총리가 개입했다는 루머가 있는 등, 정인숙 살해사건과 거의 판박이다. 이 사건은 체포된 실행범들이 나집 라작 前 총리의 경호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나 교수형을 선고받으면서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던 바람에 현재도 미제사건인 상태다.# 한편, 2019년사형을 선고받았던 실행범 중 한 명이 재심을 청구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8.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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