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적 차별 > 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양가적 차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89회 작성일 22-12-29 16:12

본문

1. 개요[편집]

대인관계에 있어서 전통적 성 역할에 충실하도록 적대적이면서 동시에 호의적인 방식으로 압력을 가하는 사회적 현상. 친밀한 관계 속에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한 채 나타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다양한 수준에서의 성차별로 쉽게 분화될 수 있다.

양가적 차별은 기존의 압제적이고 강압적이며 갈등론적 시각의 성차별에서 더 나아가, 한편으로는 압제와 동시에 추켜세우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현상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유형의 성차별은 훨씬 더 미묘하고 암묵적이고 개인적이며, 사회에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이러한 성차별적 관념 중 일부는 "매력 있는 남자, 사귀고 싶은 여자" 의 필수요소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름아닌 레이디 퍼스트.

실제로 양가적 차별을 다루는 문헌들이 종종 레이디 퍼스트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는 레이디 퍼스트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레이디 퍼스트가 "몹시 숭고한", "자기희생적인" 남성들의 덕목으로 추앙되고 있는 맥락을 지적하고 있다.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이러한 양가적 차별은 속된 말로 반항기가 쎄서 말 안 듣는 부류에 대한 제재, 도태 종용의 역할 이외에도 말을 듣고 잘 적응하며 따르는 이들[1]에게 지급되는 보상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무서운 것은, 이러한 교묘한 양면적인, 차별적 대우와 그 정당성의 제공을 통해서 기존의 고착된 권력은 사회에 잔존하는 차별적 분위기를 유지하며 그들 힘과 세력의 입지를 굳히고, 그들 영향력을 합리화 할 수 있다는 것.

양가적 차별이 존재하는 한, 이리저리 휘둘리는 이들은 권위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자들에게 고분고분한 태도를 갖출수록 꿈에도 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떡고물들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사회의 지성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는 그들이 스스로 혹은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모여 힘을 일궈 기존 영향권을 위협할만큼 자라나더라도 그대로 자연스레 편입하는 식으로 쉽사리 통제될 수 있다.

이는 천부인권의 해석을 특별히 확장해 보편적 양쪽 성 모두의 똑같은 권리 보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개념이 뚜렷이 생겨난 현대에도 여전히, 얼마든지 받아들여져 여러 부분에서 영향을 끼칠 만큼 끈질기고 온갖 곳에 널렸다.

2. 적대적 성차별주의과 온정적 성차별주의[편집]

지난 2000년에 심리학계는 여성 담론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다. 성차별 전문 심리학자 피터 글리크(P.Glick)와, 첫인상 관련 고정관념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수전 피스케(S.T.Fiske) 등의 석학들을 주축으로 하여 대규모의 연구팀이 적대적 성차별주의(HS; hostile sexism)과 온정적 성차별주의(BS; benevolent sexism)을 구분해 낸 것이다.[2]

이들은 이 논문을 발표하면서, 성차별이라는 것이 무조건 억압과 증오, 적개심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무조건 남성들은 성차별을 옹호하고 여성들은 성차별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특히나 어떤 성차별은 남녀 모두가 옹호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이들의 메시지는 (지금에 와서는 꽤나 자연스러울지언정) 그때만 하더라도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일반적인) 여성에 대한 폄하와 멸시에 더해 (어떤 여성들에 대한) 숭앙과 찬사가 교차하는 현상을 두고 통칭 양가적 성차별(ambivalent sexism)[3]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적대적 성차별주의과 온정적 성차별주의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일까? 각각의 사례에 대한 아래의 예시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양가적 차별에 대한 연구자들의 결론은, 이하의 두 목록은 한 사람 또는 사회에게서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 적대적 성차별주의의 예시
    • 여자들은 남자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동원하여 권력을 잡는 데 주저함이 없다.
    • 모든 페미니즘은 남자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도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여자들의 파렴치한 이기주의의 발로다.
    • 여자들은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훌쩍거리며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되도 않는 앙탈을 부려서 위기를 무마하려고 한다.
    • 여자들은 성적으로 "쉬워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남자들을 유혹한 후, 남자들이 다가오면 그들을 거부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 어차피 여자들은 남자들과 경쟁할 때 아무리 공정한 제도와 규칙을 도입하더라도 자기네가 탈락하면 차별이라느니 어쩌니 하며 징징댈 게 뻔하다.
    • 유능한 여자란 세상에 없다. 승진이 필요할 때마다 한 번씩 자기 상사에게 궁둥이를 대 주는 여자들이 있을 뿐.
  • 온정적 성차별주의의 예시
    • "그대는 연약하고 가녀린 소녀, 나는 그대를 지키는 백기사."
    • 남성과 여성은 보완적인 존재로, 아내는 남편을 위한 정서적 지원을, 남편은 아내를 위한 밥벌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조화롭고 화목한 가정이 만들어진다.
    • 남성들은 대체로 유능하지만 냉담한 측면이 있다. 반대로 여성들은 대체로 따뜻하지만 업무에서는 아무래도 밀린다. 이것이 남성이 여성을 잘 이끌어 주고, 여성이 남성을 잘 내조해 주어야 하는 이유다.
    • 비 오는 날에는 남자가 비를 맞는 한이 있어도 연약한 여성을 위해 우산을 양보하는 게 매너다. 날이 추우면 남자가 감기에 걸리는 한이 있어도 연약한 여성을 위해 겉옷을 양보해야 매력 있는 남자다.[4]
    • 시커먼 남성들이야 좀 험하게 굴려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여성은 언제나 소중히 여겨지고 보호받아야 한다.
    • 여자를 지키다 입은 상처는 남자의 훈장이다.
    • 많은 여성들이 갖고 있는 순수함과 끈끈한 가족애는 남성들의 피난처이자 안식처이며, 남성들이 가치 있게 여기고 우러러보아야 마땅한 것이다.

위에서 보듯 대놓고 난장판이 벌어지는 인터넷 환경이 아닌 한, 많은 인권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대에는 대놓고 적대적 성차별을 주장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재미있게도 이는 "여성혐오" 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평범한 남성들이 "뭐? 나는 그런 '혐오' 를 하지 않는다구!" 라고 반응할 때 으레 떠올리는 자국이성혐오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물론 이러한 적대적 성차별자들이 아예 그들이 하는 말처럼 "여성은 상종하지 못할 인간들"로 여기고 여성들과의 연을 끊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인류 고금을 통틀어서 아예 그런 식의 생각으로만 일관하면서 자손 번식에 성공했던 수컷은 거의 없다시피할 만큼 극소수였다. 이들은 성적 재생산을 위한 기본적 자원으로서의 여성의 최소한의 가치만을 인정할 따름이며, 그만큼 더욱 타자화된 여성의 "몸" 에 집착한다.

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은 의외로 사회적 상황에서 대놓고 말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체면이 깎이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이상형을 형성하는 데 활용되고,[5] 일부는 심지어 예능 같은 언론에 나오더라도 사회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되곤 한다. 당장 저 위에 적힌 것처럼 "자신이 추워죽겠는데도 오들오들 떠는 여친에게 말없이 자기 코트를 벗어 걸쳐주고 자신이 힘들어도 여친을 대신해서 기꺼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주는 아빠같은 매너남" 을 잘 생각해 보자.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배려넘치는 행동에 마음이 쉽게 흔들리면서 환호성을 지르며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남성들이 실제로 "나도 그런 기회가 오면 기꺼이 여자친구에게 그렇게 해 줘야 된다. 그래야 나를 더 사랑해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잠깐 힘든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 정도 인내심은 필요하다면서 이런 행동이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결국, 끊임없는 자기희생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양가적 차별에 있어서,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눈 앞의 당근" 이라고 볼 수 있다.[6]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남친이 자기 코트를 걸쳐주며 엄지척을 시전하면 여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성평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남자친구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며 자존심을 꺾어버리는 행동이라고 판단하는 일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결국, 마지못해 도움을 받고 "내 남자친구잖아?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행동이잖아?"라면서 자그마한 성의를 보이고 감사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여성운동이 강조하는 것은, 여성은 남성의 무한한 돌봄과 배려를 받아야 할 만큼 나약하진 않다는 것이다. 만일 남성이 여성보다 추위를 덜 타는 체질이라면 오히려 여성이 남성의 상태를 배려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바로잡혀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당장의 잠재적 이익을 발로 걷어차는 행동이므로, 평소에는 심지어 페미니스트로 정체화를 하더라도 이 때만큼은 "날 보호해 줘, 날 지켜 줘" 라며 일관되지 않은 행동을 할 동기가 생기는 것이다. 안 그래도 페미니즘은 개인의 사적인 이해득실(self-interest)과 종종 동기적으로 겹쳐진 것처럼 보이는 사례가 자주 드러나며, 이는 뭇 남성들의 반발[7]을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자극이기도 한지라, 이에 대한 남녀 모두의 인식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로 자청할 거면 여자인 자신에게 왜 이런 힘든 일을 시키냐고는 묻지 말자. 그딴 건 성 평등이 아니라 양가적 차별 선호의 극명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적대적 성차별주의은 그 이면에 온정적 성차별주의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가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조금 광범위한 의미에서 김여사 논쟁을 살펴보면, 여성 운전자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쯧쯧, 집에 가서 애나 볼 것이지, 여자가 되어 가지고 어딜 밖에 함부로 차를 끌고 나와?" 라며 꼰대짓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식의 적대적 성차별주의의 주요 전제는, "여성은 집안일에 가장 능숙하며(+), 능숙하지 못한 나머지 활동들은(-) 남성에게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 온정적 성차별주의의 논리로 뒷받침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경계선이 희미하기 때문에 반대의 상황도 상상해볼 수 있다. 평소 적대적 성차별을 거부하면서 온정적 성차별에는 크게 문제삼지 않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특정 경험이나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적대적 성차별자의 편을 들거나 해당 현상을 적극 옹호할 위험성이 있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적대적 성차별주의에 더 많이 동의하는 것을 확인했으며,[8] 온정적 성차별주의의 경우 남성들이 여전히 더 많이 동의하기는 해도 그 남녀 간의 차이는 확연히 작았음을 보고했다.[9] 또한 연구자들은 과열 경쟁과 노력드립을 맹종할수록 적대적 성차별주의에도 더 많이 동의하며,[10] 전통적 가치체계와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주의, 그리고 독실한 종교적 신앙심의 경우는 온정적 성차별주의을 예측할 수 있음을 보였다.[11]

3. 연애와 양가적 차별[편집]

낭만적 관계(romantic relationship), 쉽게 말해 연애는 여성에 대한 양가적 차별이 온정적 성차별주의의 가면을 쓰고 슬그머니 발을 들여놓는 첫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애에 임하는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상대방 남성을 종종 "보호자, 제공자" 로 여기곤 하는데, 이는 그 여성이 일반적인 남성들에 대해 갖고 있는 "학대자, 약탈자, 착취자" 로서의 이미지와 대응되는 것이다.

또한 어떤 남성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암묵적인 여성에 대한 타자화인 "그" 과 자신이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그녀" 의 개념 사이에서 부조화를 경험하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쉽사리 온정적 성차별을 선택할 수 있다. 즉 "그년들은 나약하다, 그녀는 연약하다" 로 적대적이면서 동시에 온정적인 성차별적 마인드셋을 설정하면 쉽게 끝나는 문제인 것이다.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지지하는 여성들이 연애를 할 경우, 이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강한 전통적 여성성 및 의존성을 드러낸다. 문헌에 따르면 이들은 남친을 만나러 갈 때 다른 여성들보다 유독 더 두텁게 화장을 하며,[12] 남친에 대해 기사도(chivalrous)적인 가치를 중시할수록 교육이나 커리어패스에 대해 관심을 적게 보인다.[13]

쉽게 말해서, 자신의 남친을 "내 인생의 왕자님" 이라고 여기는 여친들은 지위가 높거나 소득이 많은 직종, 자기개발 및 자기실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게을리하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3.1. 진화심리학의 설명[편집]

진화심리학자들은 짝 선호(mate preference)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여성의 의존성이 진화적으로 한때 적응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남성은 자손 번식을 할 수 있도록 연상보다는 연하의 여성을 더 선호하는 반면, 여성들은 자녀 양육에 더 많은 안전과 도움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많은 자원과 지위를 갖춘 남성을 선호한다는 것이다.[14] 여기에 양가적 차별이 상당한 설명력을 갖는데, 예컨대 여성을 "보호해주어야 할 존재" 로 생각하는 관점은 "요리를 잘 하는 어린 여성" 에 대한 남성들의 선호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15]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어떤 이론가들은 "진화적으로 보아 자원과 지위에 대한 극도의 경쟁성을 보이는 남성들에 대한 여성의 선호[16]가 적응적이기에, 이러한 선호로 인하여 원시적인 가부장제가 나타났다" 고 주장하기도 하였다.[17] 결국 그러한 남성들에게서 보호받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음으로써, 여성들은 더욱 안전하게 자녀 양육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에는 나름대로 진화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남성들에게도 "강한 남성" 이 되는 것이 매력적이게 만들어서 결국 피튀기는 경쟁과 혈투를 치르게 만들고, 여성들을 적대하는 심리가 방치되며, 그 결과 현대에 이르러서는 "내 먹잇감에 대한 경쟁자" 로 새롭게 떠오른 직장여성들에 대한 적개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논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도 여군과 여경에게 남자보다 쉬운 업무만 하고 꿀만 빨고 산다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일 것이다.[18] 단, 이는 가부장적인 판단을 넘어 그런 사례들이 꽤 많은데다 언론에서 보도가 많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장기화된 경제불황과 남초사회와 경쟁과다로 인해 되려 낙오되는 여성 또한 속출할 것이란 견해도 존재한다. 실제로, 남성들에게 이미 남초가 된 현대 사회의 상황을 넌지시 인식시키면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했다는 심리학계의 연구결과가 있으며,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여성에게는 온갖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경쟁 상대가 되거나 자신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다면 잠재적인 경쟁자가 되는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을 지독하게 내쳐버리는 모습까지 보여줬다고 한다. 여기서 과열 경쟁이 보여주는 폐해를 알 수 있다.

3.2. 하지만 연애 중에 그 정도는 괜찮잖아요![편집]

물론 "그런데 이런 거, 꼭 불편하게만 생각해야 되는 건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양가적 차별이 그 "웃는 얼굴" 을 보여주는 연애 현장에서는,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남자가 '온정적 성차별'에 비판적 반응을 보이면 "네가 그래서 여친이 없는 거야" 소리를 듣고 차이기 쉽다.

온정적 성차별주의의 일부는 정말로 가장 설레는 사랑의 속삭임이기도 하며, 상대방을 엄청나게 칭찬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남녀는 서로 보완적이며, 서로가 (남성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서로의 부족한 면을 조화롭게 채워주는 게 필요하다" 는 기초 논리를 깔고 들어가는 온정적 성차별은 이게 정말 차별적인 생각이 맞나 싶을 만큼 긍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인류 자체적으로든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고 가능하다면 연애관계-가족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 낭만적인 미사여구 하나까지 사회적 이론으로 묶고 그 영향을 따지는 인간관계를 사랑이나 연애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달콤한" 애정표현들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어떤 커플은 이를 통해 위로를 얻을 것이고, 어떤 부부는 고단한 결혼생활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웃는 얼굴" 의 애정표현 밑에 깔려 있는 논리는, 전체 사회의 경향성(tendency)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모아 놓았을 때 뜻밖의 "화난 얼굴" 을 향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미묘한 측면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 애초에 처음부터 "복종해라! 날 섬겨라! 남자가 까라면 까라!" 로 나오는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여성들이 쉽사리 눈치채고 저항할 수 있는데, 온정적 성차별은 그게 안 되는데다 커플에 따라서는 때로 일시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으며 매우 끈끈한 애정관계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지지하는 여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적대적 성차별주의에도 호의적이고 긍정적이게 되며,[19] 또한 혼전순결을 거부하거나 독신으로서 일에만 몰두하는 다른 여성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발견도 있고,[20] 심지어 남친에게서 온정적 성차별에 입각한 속삭임을 단지 많이 들었을 뿐인데도 현실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불평등에 대해서 그것을 애써 긍정하고 실드를 치려는 심리가 나타나기도 한다.[21]

또한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자주 발언하는 남성들일수록 자신이 교제하는 여성의 순결 여부에 더욱 집착한다는 연구도 있다.[22] 심하게는, 온정적 성차별주의을 내재화한 여성들은 강간 사건이 벌어져도 피해자의 부정 또는 정숙하지 못한 태도를 먼저 비난하는 경우가 많으며,[23] 이는 피해자가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정조" 라는 도덕적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오가는 커플은 가정폭력 및 데이트 폭력에 그만큼 무기력해진다는 점이다.[24] 다시 말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을 지지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교제하는 남성 혹은 남편이 적대적 성차별을 보이거나 직접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이를 해결할 생각 자체를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여성들은 암묵적으로 "내 남자가 공격적이고 가학적이라는 건 그만큼 나를 지켜줄 수 있는 힘도 있다는 뜻이겠지?" 와 같은 생각을 깔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폭력을 가할수록 그 폭력 자체가 어쨌든 그 남자를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되고 마는 것이다.[25] 물론 이것만으로 학대당하는 아내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거나 내지는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여성들이 멀쩡한 남성들 놔두고 학대적인 남성과 잘못 결혼한다거나, 경찰 및 공권력의 개입 상황에서 도리어 남편의 실드를 쳐주는 뒷목잡을 선택을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는 것이며, 그 이유 중에는 그들의 인식 속에 뿌리박힌 성차별적 사고방식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4. 여성의 사회 진출과 양가적 차별


대표자 : 박두순대표전화 : 041-592-6500팩스 : 041-592-6666이메일 : cdassd6500@hanmail.net
주소 : 충남 천안시 서북구 두정역서5길 4, 두정프라자 301호사업자등록번호 : 312-80-13827

Copyright © (사)충남장애인복지정보화협회부설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All rights reserved.